적과 동지 확실히 선 긋는 '투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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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호 06면

이명박 후보 캠프를 가장 다이내믹하게 이끌었던 이재오 최고위원이 24일 지리산으로 떠났다. 경선 이후의 정국 운영 구상을 하기 위해서다. 그는 자신이 당 대표에 도전했던 지난해 7·11 경선 직후에도 마음을 정리하겠다며 지리산으로 향했다.

<'MB 대통령' 꿈꾸는 13人의 정치두뇌>10년 前 부터 대선 출마 권유한 이재오 최고위원

격전을 치른 뒤 지리산을 찾은 모습은 지난해와 올해가 마찬가지다. 그러나 선거 결과는 정반대다. 7·11 경선에서 그는 당시 강재섭 후보에게 여론조사에서 7% 포인트를 앞섰지만 선거인단 투표에 밀려 대표 자리를 내줘야 했다. 막판에 박근혜 전 대표가 강 후보를 지원한 결과다. 올해 경선에선 그가 민 이명박 후보가 선거인단 투표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여론조사에서 8%포인트 이상 앞서며 박 전 대표를 물리쳤다. 지난해 패자였던 그는 이번엔 승자가 됐다.

이 최고위원이 이 후보 승리의 일등공신이라는 데는 대체로 공감한다. 그는 7·11 전당대회의 충격에서 벗어나자마자 전국을 돌며 이 후보 지지를 확산시켰다. 특히 이 후보의 취약점이었던 당내 기반을 강화하는 데 공을 들였다.
이 최고위원은 “우리집으로 초대해 저녁을 대접한 의원과 당협위원장만 해도 80명에 이른다”며 “음식을 장만하느라 집사람은 물론 시집간 두 딸까지 불러 고생을 시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전당대회의 기억을 다시 끄집어냈다.

그는 “만약 박 전 대표가 중립을 지켰다면 내가 당 대표가 됐을 것이고 그랬다면 내가 어떻게 이 후보 캠프의 좌장 역할을 할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박 전 대표가 나를 떨어뜨리려고만 안 했어도 내가 어떻게 전국을 수십 차례 돌며 이 후보 조직을 다지고 캠프 위기 때마다 앞장서서 싸웠겠느냐”며 “낮에는 당 대표를 하다 밤에는 캠프에서 일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후보를 지지한다는 이유로 박 전 대표가 나를 떨어뜨렸으니 내가 마음놓고 지지할 명분이 생긴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최고위원과 이 후보의 사이는 각별하다. 1964년 한·일회담 반대 시위 당시 이 후보는 고려대 상과대 학생회장으로, 이 최고위원은 중앙대 한·일회담 반대 구국투쟁위원장으로 함께 앞장섰다. 90년대 초반 이 후보가 ‘6·3 동지회’ 회장을, 이 최고위원이 부회장을 맡으며 친분을 쌓았다. 나란히 등원한 15대 국회에선 ‘한반도 대운하’ 구상을 함께 논의하는 일도 있었다. 이 최고위원은 “그때 이 후보에게 ‘그건 형님이 국회의원을 평생 해도 못 이룬다’며 대통령 도전을 권했다”며 “이 후보는 국회의원이 체질에도 안 맞으니 대통령이나 시장같이 집행하는 일을 하라고 했다”고 기억했다.

2002년 서울시장 선거 때 이 후보는 이 최고위원에게 선대본부장을 맡겼다. 이번 경선의 경우 최고위원이라는 당직 때문에 캠프의 직함을 갖진 않았지만 선거 막판 검찰청사 앞에서 철야농성을 하는 등 늘 최전선으로 달렸다.

그런 그가 경선 직후 논란의 중심에 섰다. “가슴속엔 후보 낙마를 생각하면서 겉으로는 화합이란 이름으로 손을 잡는 것이 구태”라는 등 박 전 대표 진영을 겨냥한 듯한 강경 발언으로 긴장을 고조시켰다. 캠프 내부에서 그를 견제하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그러나 이 후보는 “이 최고위원이 안 된다고 하는 사람은 내 지지자가 아니다”며 굳은 신뢰를 표했다.
이 최고위원이 지리산에서 돌아온 뒤 어떤 길을 택하는지에 따라 당 분위기가 급변할 수 있다.

그는 지리산으로 떠나기 전 본지 기자에게 “당의 눈높이를 국민에 맞출 수 있도록 끊임없는 개혁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밝혔다. 또 “당의 외연을 넓혀 보수·수구 꼴통당이니, 냉전 유물이니 하는 것을 과감히 벗어버려야 한다”는 말도 했다. 당의 변화를 요구하는 취지다.
박 전 대표 쪽에 대해선 “패자 진영을 어떻게 하느냐 하고 자꾸 말하는 것 자체가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이라며 “패자는 패자 진영대로 두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선은 승자와 패자가 있게 마련이고, 정권교체는 승자를 중심으로 하나가 돼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패자 달래기에 나서려는 이 후보와 기류 차이가 느껴진다. 그는 경선 과정에 대해서도 “하루에도 열두 번씩 때려치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며 “군사독재와 싸울 때도 이렇게 마음으로 인내해 본 적이 없다”고 감정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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