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즐거움보다 소유의 즐거움을 강조하는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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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스포츠카인 페라리는 전 세계 어디서나 ‘부의 상징’으로 통한다. 차 한 대당 가격이 수억원씩 해서가 아니다. 한정판매(리미티드 에디션)라는 독특한 마케팅 기법을 활용해 페라리는 돈만 있으면 누구나 언제든지 살 수 있는 대중차라는 이미지를 벗어났다. 달리는 즐거움뿐 아니라 소유의 즐거움을 주는 세계 유일의 자동차 업체가 된 것. 페라리의 모든 차량에는 생산 날짜와 순번이 적혀 있다. 한 사람만을 위해 제작한 특별한 차라는 의미다.

이탈리아 북부 볼로냐 공항에서 서쪽으로 한 시간 정도 자동차로 달리면 세계 최고의 스포츠카 업체인 페라리 본사가 위치한 마라넬로에 다다른다. 페라리가 아니었다면 평범한 농촌에 불과했을 작은 도시다. 멀리서 공장 건물과 함께 노란색 바탕에 검은 말이 그려져 있는 페라리 로고가 보인다. 노란색은 마라넬로 시를 상징한다. 검은 말은 제1차 세계대전 때 전투기 조종사로 영웅이 된 프란체스코 바라카가 전투기에 그려넣었던 마스코트 문양이다. 자동차 레이서이자 페라리의 창업자인 엔초 페라리에게 하사한 것이다.

아메데오 펠리사(61) 사장은 “페라리는 단순히 빠른 차 이외에 소유의 기쁨을 주는 자동차 업계의 유일한 메이커”라며 “20년 된 중고차가 시판 가격보다 비싼 차는 페라리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페라리 고객은 최소 50억원 이상의 현금을 갖고 있다고 한다. 또 한 달에 두 번 정도 페라리를 타는 경우가 가장 많고 고객의 5%는 1년에 한 번 정도 운전한다고 한다.

그는 “손으로 일일이 만들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그만큼 차는 정교하고 고객 개개인의 특성을 그대로 살려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올 10월 페라리는 한국에 진출한다. 동아제분을 모체로 하는 운산그룹이 독점 수입권을 따냈다. 한국에 배정된 물량은 연간 50∼60대로 수요가 넘쳐도 배정된 차량 이외에는 더 팔 수 없다. 운산그룹의 안종원 부회장은 “모두 주문제작하기 때문에 수요가 몰릴 경우 인도받을 때까지 1년 이상 기다리는 경우도 있다”며 “페라리는 빠른 속도를 내기 위한 기술뿐 아니라 안전기술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소개한다.

마라넬로 본사(23만㎡)에는 2684명이 근무한다. 이 가운데 672명이 사무직이고 1220여 명이 공장 근로자다. 790명은 포뮬러1(F1) 경주차를 개발하고 생산하는 데서 일한다.

612 스카글리에티(3도어 4인승 쿠페)와 F430(2인승 쿠페) 조립라인을 한 시간 반 동안 지켜봤다. 국내 언론에는 처음 공개됐다. 이들 차량의 가격은 각각 4억, 2억원대다. 페라리는 지금까지 국내에서 100여 대가 팔렸다.

페라리는 지난해 5671대를 생산했다. 우선 조립공장은 일반 양산차 공장과 달리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을 갖추지 않았다. 차량 한 대 조립하는 데는 약 30분이 걸린다. 페라리의 경우 차량 한 대에 들어가는 각종 부품을 커다란 수레에 모두 싣고 철도같이 생긴 레일 위에서 밀고 다니며 조립한다. 90% 이상 수작업이라 컨베이어 벨트가 필요 없다는 게 페라리 관계자의 설명이다.

벤츠ㆍBMW 같은 럭셔리 카 업체도 차량 한 대 조립에 10분 넘게 걸리지 않는다. 현대자동차 쏘나타의 경우 50초 만에 한 대가 생산된다. 조립 과정 중 가장 중요한 차체-엔진 결합 공정에선 10분 정도 걸린다. 숙련된 기능공 네 명이 한 조가 돼 엔진을 접합한다. 여성 기능공 여럿이 눈에 띈다. 이들은 시트 바느질을 하느라 분주하다. 시트 하나에는 소 한 마리의 가죽이 들어간다고 한다. 내장 조립 공정은 앤티크 가구 공장과 흡사하다. 시트의 바느질 뜸 간격이나 색깔, 디자인을 고객이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다.

페라리 차의 가장 큰 특징은 알루미늄 차체다. 마테오 본치아니 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장은 “알루미늄은 강철보다 30% 이상 가볍고 강성이 뛰어나지만 용접이 어려워 특별한 노하우가 있어야 알루미늄 차체를 만들 수 있다”고 설명한다.

수억원 하는 차를 만드는 페라리 작업자들의 급여는 어떨까. 홍보팀 다비데 크루저 이사는 “일반 자동차 공장 작업자 평균 수준이지만 이익을 많이 내 복지 수준은 최고”라며 “급여보다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차를 만든다는 자부심으로 일한다”고 말한다. 그럼 노사관계는 어떨까. 페라리는 1960, 70년대 노조 파업이 심각했지만 90년대 페라리가 부활하면서 노사화합의 직장으로 변모했다. 지금도 가끔씩 파업을 하지만 노사 대화로 해결한다고 본치아니는 설명한다. 페라리는 올해 중국ㆍ러시아ㆍ한국 등 신흥시장에서 수요가 넘쳐 60년 역사 처음으로 6000대 생산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공장 견학을 끝내고 본사에서 약 1㎞ 떨어진 피오라노 트랙(자동차 경주장)으로 향했다. 페라리가 자랑하는 3㎞ 길이의 피오라노는 스포츠카 개발을 위한 핵심 시설이다. 이곳에서 시속 300㎞를 돌파하고, 시속 150㎞에서 급회전을 하는 주행시험을 한다. 여기서 나온 각종 데이터가 고성능 스포츠카를 만드는 기본이 된다. 앗! 멀리서 많이 본 얼굴이 보인다. 전설의 포뮬러1(F1) 드라이버 마이클 슈마허다. 지난해 은퇴한 그는 F1 경기에서 유일하게 일곱 번 챔피언을 차지한 당대 최고의 레이서다. 얼른 달려가 사인을 해달라고 했다. 운이 좋았는지 슈마허는 서슴없이 굵은 매직펜으로 큼지막한 사인을 해줬다.

마라넬로(이탈리아)=김태진 기자

☞페라리=이탈리아의 자동차 레이서로 유명했던 엔초 페라리가 1947년 창업했다. 처음부터 고가 스포츠카만 만들어 자동차 경주에서 가장 많이 우승했다. 하지만 한정판매와 고가 스포츠카만 고집하다 경영난으로 69년 이탈리아 피아트 그룹에 합병됐다.

현재 창업자인 엔초 페라리의 아들인 피에르 페라리(62)가 5%의 지분을 갖고 부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14억5000만 유로(약 1조9000억원)에 영업이익률은 12%에 달해 자동차 업계 최고 수준이다. 연간 생산대수는 고작 5000∼6000대로 10∼20년 된 차량이 당시 시판 가격보다 비싼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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