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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통령 말낮추며 친근감 표시/여야 영수회담 이모저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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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운동·날씨로 얘기 시작 분위기 시종 화기/이 대표 “방북 막으면 걸어서라도…” 여유도
○…김영삼대통령 취임이후 두번째로 열린 11일 오전의 여야 영수회담은 김 대통령·이기택 민주당 대표·박관용 청와대비서실장 등이 모두 같은 야당을 했던 인연이 있어 부드러운 덕담으로 시작.
오전 10시30분 이 대표가 집무실에 들어서자 김 대통령은 『오늘 취임 1주년을 축하해요』라고 인사.
이 대표는 『1년이 언제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겠습니다. 대통령도 그러시죠』라고 따뜻하게 응답.
두사람은 이어 날씨와 운동을 화제로 환담.
○“야가 실질적 여”
김 대통령이 『청와대는 바깥보다 2도 정도 낮다. 오늘 아침에 뛸 때도 영하 3도였다』고 하자 이 대표는 『하루에 몇㎞를 뛰시나요』라고 질문.
김 대통령이 4㎞라고 답하자 이 대표는 『연세를 잡수시면 과거와 같지 않으실텐데…』라고 걱정의 뜻을 표했고 김 대통령은 『몸에 뱄다』고 자신감을 표출.
이 대표가 『저도 새벽운동 좀 해야겠습니다. 등산 좀 할 수 있게 야당에 여유를 좀 주십시오』라고 슬쩍 말에 무게를 싣자 김 대통령은 『운동중엔 등산이 최고인데 5시간,10시간이 걸리니 나는 하기가 어렵다』고 받아넘겼다.
과거 야당시절 상하관계였던 까닭인지 김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말을 낮추는 모습.
○…10시25분 이 대표가 청와대 현관에 도착하자 이원종 정무수석이 현관으로 안내했는데 이 대표는 본관 1층 로비를 걸어 들어오며 『이 정권은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라고 호감을 표시했고 이 수석은 『지금은 야당이 실질적 여당』이라고 화답.
이 대표가 2층 대기실로 들어서자 한때 이 대표의 비서관을 지내기도 한 박관용 비서실장이 그를 반갑게 맞았고 이 대표는 박 실장과 악수를 하면서 『사진을 찍지 말자』고 보도진에 주문.
이 대표가 담배를 집어들면서 『오늘 선물은 뭐가 있느냐』고 묻자 박 실장은 『기념품이나 준비할까요』라고 가볍게 대답했고 주돈식대변인은 『선물은 야당이 주어야 한다. 여당이 프리미엄을 다 포기했으니』라고 응수.
○“생산정치 계기”
○…청와대는 정치개혁법안 여야합의 통과를 계기로 이루어진 이번 여야 영수회담이 생산적인 정치를 향하는 큰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기대.
이원종 정무수석 등은 『앞으로의 여야관계는 훨씬 원만해질 것』이라고 장담하면서 야당이 「비판적 공조체제」를 유지하며 국정의 동반자로서 기능한다면 그들에게도 여러가지의 길이 열릴 것이라고 강조.
이 수석은 이날 회담에서 다소의 이견이 있었던 것과 관련,『모든 국정의 부문에서 여야의 몫이 다르므로 개의할 바 없다』며 전체적으로 동반자적 인식을 하게 된 것이 성과라고 논평.
이 수석 등은 『앞으로 바람직한 여야관계 정립을 위한 여러가지 가시적 조치가 있을 것』이라고 예고. 그는 정치개혁에 대한 초당적 공감대가 형성된 만큼 청와대는 공정한 게임을 위한 여건조성 등 국회를 비롯한 정치권을 활성화하기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지만 야당이 구태에서 얼마나 탈피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지적.
○…김 대통령이 야당이 여당과 대등한 위치에서 선거를 치를 수 있게 만든 정치개혁법안을 「제공」했고 이 대표를 「영수」로 인정하여 국정 전반을 논의한 것만도 이 대표에 대한 큰 선물이라고 청와대측은 생색.
청와대는 개혁에서 소외된 야당에 동참할 기회를 부여하고 앞으로 이 대표가 이번 회담을 활용하기에 따라서는 운신의 폭을 상당히 넓힐 수 있게 된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날 회담의 의미를 설명.
청와대는 그간 야당이 개혁의 국외자로 곤혹스런 위치에 있었는데 앞으로는 스스로를 제약해온 굴레를 자연스레 벗어버리고 국정을 당당히 논할 수 있게 되었다고 평가하면서 이 마당에 선물부족 운운은 넌센스라고 역설.
청와대는 이 대표가 방북문제 등을 거론하면서 접근방법이 달랐다면 결과가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표시.
○…이기택대표는 청와대로 출발하기에 앞서 자택에서 회답내용에 대해 『모든 것을 다 얘기할 것이지만 역점을 두어 말할 부분들이 있다』며 세가지를 언급. 우루과이라운드(UR)의 최종이행게획서 수정과 농촌문제,그리고 물가·국가보안법 개정문제를 이 대표는 주요의제로 손꼽았다.
이 대표는 물가부분에 대해 『대통령도 보고를 들어 알겠지만 연초부터 현장을 가봐 느낀 서민들의 불경기에 따른 「참상」을 보다 구체적으로 전달하겠다』고 부연. 또 이 대표는 물가를 잡는 방법론으로 『일반 물가보다는 공공요금을 억제·동결하는 방향으로 권고할 것』이라고 제시.
이 대표는 이어 김 대통령의 거듭된 보안법 고수 언명에도 개정이 불가피함을 재차 강조. 이 대표는 『보안법은 대단히 중요한 법률이고 여야간에 쟁점이 되어온 예민한 법률』이라며 사안의 중요성을 지적. 이 대표는 『대통령은 국회경험이 많은 분이라 여야 합의로(보안법 개정을 논의할) 소위가 구성되었다면 해결은 시간문제 아니냐』고 낙관.
○“모든 현안 얘기”
특히 이 대표는 북한 핵사찰이 다시 부진해지는 등 남북관계의 난관에 불만을 표시하며 『내가 일찍부터(북한에) 간다고 했지 않았느냐』고 재차 방북의사를 천명. 이 대표는 정부에서 자신의 방북을 막는다면 『뒷짐지고 걸어서 판문점까지 가볼까』라며 짐짓 여유.
○…이 대표는 청와대 영수회담 당일인 11일 대표취임 1주년까지 겹친 겹경사에 밝은 표정. 김 대통령은 회담 전날 난화분을 보내 대표취임 1주년을 축하하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
이날의 영수회담은 지난해 6월에 이어 9개월여만에 열리게 된 것.
이 대표는 청와대 출발에 앞서 『그동안의 국정현안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전부 얘기할 것』이라고 의욕을 과시.
○난화분 선물보내
이 대표는 또 당3역·대변인·여야 정치관계법 협상대표들을 포함하는 대규모 여야 오찬회동이 『새로운 정치개혁의 모습을 국민앞에 보이는 것』이라고 설명. 이 대표는 회담에 앞서 이날 아침까지 측근들과 회담내용들을 점검하는 등 만반의 준비.
○…이 대표는 11일 영수회담하러 떠나기 직전 기자들이 이날 청와대측이 영수회담에서 야당이 줄 「선물」이 적은 것 같다고 지적하자 『인의 장막에 싸여있으면 실상을 제대로 모를 수 있으니 야당 대표가 알고 있는 것을 솔직히 말해주는 것 자체로도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느긋한 표정.
이 대표는 이것을 자신의 방북문제에 연결시켜 『김 대통령이야 취임한지 1년 밖에 안돼 눈과 귀가 열려있다고 보지만 40년을 정상에 앉아있는 김일성은 현실을 완전히 오판하고 있을 수 있다』면서 『내가 가면 솔직한 얘기는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방북필요성을 설명.
이 대표는 영수회담에 앞서 김대중 전 대표와 별도로 통화한 일은 없으나 회담이 끝난뒤 초청해 설명하는 것은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김현일·박영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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