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없는 법원 구치감(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동양 최대,최신의 법원청사를 마련하면서도 재판받을 피고인들이 대기하는 구치감엔 화장실조차 설치하지 않았다는 보도(이틀전 중앙일보 23면)는 분노를 자아내게 한다. 더욱 참기 어려운 것은 사정이 이렇게 된 것이 구치감을 짓기로 한자리를 법무부의 요청에 따라 검찰청사의 테니스장으로 내주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법원과 검찰의 인권의식이 어떠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보기가 아닐 수 없다.
최근 사법부는 사법제도발전위를 구성해 국민의 인권신장을 위한 개선안들을 마련했다. 또 서울 형사지법은 법정안에서는 수갑과 포승을 풀도록 했다. 검찰은 검찰총장이 바뀐뒤 수사과정에서 가혹행위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한 실무지침을 시달하는 등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듯 했다. 그러나 바로 한 울타리안에서 피고인들에게 화장실조차 마련해주지 않는 기본적인 인권유린이 벌어지고 있다.
재판을 대기중인 피고인들은 청사내 화장실을 이용하려 해도 수갑과 포승을 풀어주고 감시할 교도관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아예 이용을 금지당하고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대변은 참고,소변은 철창 안의 플래스틱통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해외토픽으로 세계에 알려져 나라망신살로나 번지지 않을지 걱정이다.
법원이나 법무부측은 사소한 실수쯤으로 치부하고 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생리작용조차 억압하는 것이 어떻게 사소한 실수일 수 있는가. 무죄로 추정되는 미결수에 대한 대접이 이렇다면 기결수에 대해서는 어떨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법원·검찰청사는 89년 8월에 준공되었다. 그동안 5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언론이 지적하기전에 문제를 해결하고도 남았을 시간이다. 행정업무를 맡은 사람들의 무감각은 접어두자. 우리 사회의 엘리트라고 자부하고 그 많은 판·검사 누구라도 시정을 촉구하고 나섰어야 했을 일이 아닌가.
하루빨리 구치감을 원래 설계대로 새로 지어야 한다. 피고인들은 용변조차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해놓고 구치감이 들어서야 했던 자리에서 테니스를 즐기로 있대서야 말이 되는가. 현재의 구치감 지하가 암반이어서 개조공사가 쉽지 않는다건 아무런 변명거리도 되지 못한다. 구치감을 마련할 수 없는 자리에 구치감을 마련한데서 문제가 생긴 만큼 「원상회복」을 해서 해결해야 마땅하다.
국민의 인권보호가 복잡한 이론연구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지사지로도 간단히 문제를 파악할 수 있고,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다. 이번 일에서 사법부와 법무부는 부끄러움을 느껴야 마땅하다. 법원 구치감에서 나는 악취는 생리현상의 결과가 아니라 인권의식이 썩고 있는데서 나는 악취임을 알아야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