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삶>1.박물관大 수강열기 가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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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저 잘 생긴 절굿공이 좀 보세요.저걸로 곡식을 쿵쿵 찧으며아마 우리 어머니들은 가슴에 쌓인 한을 풀어냈을 거예요.』 『맞아요.요새 말로 스트레스 푸는 거겠죠.우리가 박물관대학 나와공부하면서 기분전환하듯 말예요.』 겨울 추위가 마지막 안간힘을쓰듯 바람이 거세던 지난 21일 오후.연구모임이 없는 겨울방학을 참을 수 없어 가까운 한국민속박물관을 찾았다는 박물관대학 졸업생 주부들이 옛생활용품을 앞에 두고 열심히 의견을 교환중이다.진지하면서도 탐 색적인 얼굴표정에 활기가 가득차 있다.국립중앙박물관과 한국박물관회가 공동으로 마련하는「박물관대학」.우리의 옛것을 통해 오늘의 우리를 되돌아보게 한다는 취지로 마련된이 대학이 중년여성들에게 제2의 인생을 열어주는「삶의 현장」으로 자 리잡아가고 있다.
지난 77년 개강된 박물관대학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우리의 역사와 문화예술을 강의하는 특별강좌.4백명의 수강생중 초창기 관련 전공인들이 주를 이루던 이 대학은 80년 이후「나의 세계」를 갖겠다는 40~50대 중년여성들에 의해 강의 좌석이 점령(?)되면서 이제는「주부」박물관대학이란 이름이 오히려 걸맞을 정도가 돼버린지 오래다.
『결혼후 약국을 경영하며 시부모 모시랴,아이들 뒷바라지 하랴너무 오랫동안 나를 잊고 살았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어요.그때가쉰을 코앞에 둔 때였지요.』 10년전 박물관대학을 수강한뒤 계속적인 연구반모임을 쉬지 않고 해왔다는 李種順씨(59.서울종로구구기동).
그는 미술 전공하는 큰딸이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을 준비할때 그동안 갈고닦은 해박한 지식으로 관련 책을 찾아주는 등 일류 조교로 일했다며 뿌듯해한다.박물관대학을 다닌 뒤부터 미술을 전공하는 두 아이들과도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수 있는 유식한(?)엄마가 됐다고 자랑하는 夏泰子씨(54.서울서초구잠원동)는『우리의 문화를 알아간다는 기쁨과 희열감으로 하루하루를 젊게 산다』고 말했다.
1년과정으로 1주일에 한번씩 3시간 수업을 받는 박물관대학의교육내용은 한국사.민속학에 관한 것들.1학기 개론수업 이후 2학기 동안은 한국의 불상.금속공예.세시풍속등 보다 전문적인 내용으로 안목의 지평을 넓혀준다.그러나 1년과정을 마친 주부 만학도들은 결코 이에 만족할수 없다며 연구팀을 결성,다시찾은 자신의 세계에 대한 계속된 집념을 보여주기도.
「박우회」「온고회」「구공회」「팔우회」등 현재 11개나 되는 연구팀들의 회원은 각 약 30~40명 정도.2주일에 한번씩 전문가들을 초빙,로마사.잉카문명.우리문화가 일본문화에 미친 영향등 전공자를 방불케할 정도의 주제로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또 매년 1~2회의 국내답사와 이집트.인도.이스라엘등지까지 외국답사를 다녀오는 열성파들도 적지 않으며 제주도.의정부.온양등 지방에서 빠지지않고 올라오는 이들도 있어 그 열의를 짐작케한다. 국내답사를 10년 이상했다는 李榮順씨(50.서울송파구문정동)는『신라불상은 옷이 아름답고 고려불상은 얼굴이 도톰하다』며『어떤 불상을 보든 연대를 알수있을 정도가 됐다』고 전문가적경지를 내보였다.
매년 방학때면 박물관을 찾는 학생들의 안내를 맡고있는 연구반주부들은 지난 88올림픽때 한국을 찾은 외국인 안내도 맡아 중년의 여가에 공부를 하고 그 지식을 사회봉사에 활용하는 바람직한 모델을 제시했다.
〈文敬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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