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총리의 고뇌어린 답변/김진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이회창 국무총리는 19일 국회에서 오랫동안 자신의 가슴에 사무쳐있던 기억 하나를 털어놓았다.
그가 경기중 4년이었던 1949년 서울지검 검사였던 아버지 이홍규씨가 어이없게도 수사당국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했던 사건이었다.
민주당 유인태의원이 야당·재야가 70년대의 대표적인 용공조작이라고 주장하는 민청학련사건을 거론하며 이에 대한 이 총리의 견해를 끈질기게 요구하자 이 총리는 그 기억을 답변속에 집어넣었다.
당시 이 검사는 이승만대통령과 개인적으로 친하던 어느 도지사를 전격적으로 구속했던 일이 있었다.
빈민에게 가도록 되어있는 구호물자를 유용한 혐의였다.
그는 법원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그후 이 검사는 그 자신이 야당 의원 수명과 함께 국가보안법 우반혐의로 전격 구속됐다.
그때 그는 정신없이 얻어맞은후 물고문·전기고문을 심하게 받았다고 한다. 수사관들은 『너 남로당원 아니냐. 빨리 불어라』고 다그쳤고 이 검사는 끝까지 허위자백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그는 법원에서 무죄로 석방됐으며 검사로 복직돼 그후 광주검사장까지 지냈다.
그 무렵 사춘기였던 이 총리는 아버지가 초죽음이 되도록 고문을 받고 온 집안이 공포에 휘말리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 총리는 이런 집안의 사연을 왜 국회본회의장에서 언급했을까.
그는 지금 야당 의원이 된 이철·유인태씨 등 대학생들이 74년 용공혐의로 몰려 사형선고를 받았던 민청학련사건에 대해 뭔가 자신의 고백적 메시지를 밝히고 싶었던 것 같다.
그는 『(내 아버지가)억울하다는 것을 자식인 내가 누구보다도 잘 알지 않겠느냐』며 간접적으로 민청학련 피해자에 대한 이해의 뜻을 내비쳤다.
그러나 총리로서,공식적으로 그는 발걸음을 더 떼지 않았다.
그는 『이 사건에 관련된 의원들이 거짓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총리로서(민청학련이) 반국가단체만 판결을 거짓이라고 말씀드릴 수는 없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의 이같은 고뇌어린 답변자세를 보면서 공인으로서의 처신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새삼 느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