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은퇴자 새 일자리로 '실버'시험감독관 인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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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5년 전 중학교 교장으로 정년 퇴임한 성태수(68.서울 서대문구 홍은동)씨는 19일 한국물류협회에서 주관하는 물류관리사 자격시험에 감독관으로 참가했다. 성씨가 은퇴 후에도 시험 감독관으로 나선 건 이번이 벌써 11번째다. 성씨는 "시험 감독은 내 전공이나 마찬가지야. 자신도 있고 보람도 있지"라고 말했다.

성씨가 이날 시험장인 서울 당산중학교에서 현직 교사인 또 한 명의 감독관과 함께 시험지 배부와 부정행위 단속 등 시험 감독에 보낸 시간은 5시간 정도. 일당으로 시간당 1만원꼴인 5만원을 받았다.

노인 시험 감독관이 시험 시행기관이나 참가 노인들에게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한국노인인력개발원과 함께 2005년부터 노인 일자리 사업의 하나로 일정 요건을 갖춘 60세 이상의 노인들을 선발해 시험 시행기관에 감독관으로 파견해 오고 있다. 대개는 교사나 공무원 출신의 고학력 노인들이다. 시험 시행기관이나 시험의 중요도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이들은 대개 시간당 1만원의 수당을 받는다.

◆어르신 시험 감독관 올해 2100여 명=복지부에 따르면 올 8월 중순 현재까지 시험 감독관으로 파견된 노인은 모두 2100여 명이다. 이는 지난해(1200여 명)보다 1.6배 늘어난 규모다. 2005년(148명)과 비교하면 무려 14.2배 증가했다.

노인 감독관을 이용하고 있는 시험 시행기관도 2005년 1곳에서 지난해 6곳, 올해 18곳으로 크게 늘었다. 7월에는 문화관광부 산하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전국 9개 시험장에서 시행한 생활체육지도사 필기시험에서 노인 105명이 감독관으로 활동했다. 한국개발연구원(경제경시대회.30명), 국사편찬위원회(한국사능력검정.60명), 한국학교사회복지사협회, 한국자격개발원 등도 올해 처음으로 노인 감독관을 활용했다. 한국물류협회는 이날 치러진 물류관리사 시험에 전체 부감독관 인원의 86%에 이르는 446명을 노인 감독관으로 위촉했다. 단일 시험으로는 최대 규모다.

특히 올해는 공무원 채용시험에도 노인 감독관이 파견됐다. 국회사무처가 5월 국회공무원 채용시험에 9명, 중앙인사위원회는 9일 7급 국가공무원 공개 채용시험에 43명의 노인을 감독관으로 활용했다. 대구시(27명)와 대전시(17명) 등 지방자치단체도 지방공무원 채용시험에 노인 감독관을 위촉했다.

◆"역시 경륜이 최고"=신용정보협회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국가 공인 신용관리사 자격시험에 노인 감독관을 활용했다. 신용정보협회의 기경민 사무국장은 "현직 교사인 젊은 정감독관과 미묘한 갈등을 보이는 경우도 있지만 경험에서 나온 노련함과 응시자에게 주는 보이지 않는 권위가 노인 감독관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 시험 감독관 사업담당 원신원씨는 "이런 시험은 주로 공휴일이나 방학 때 있기 때문에 감독관 자리에 대한 경쟁이 별로 없는 데다 정부 예산도 따로 필요 없어 수요자나 공급자 모두에게 각광받고 있다"며 "아직 시행 3년째인 만큼 대상 노인을 늘리기보다는 시험 시행기관 참여를 좀 더 늘려 노인들에게 안정적인 일자리가 되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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