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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칸 사회면 웃음과 풍자-왈순아지매 6천회 정운경화백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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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 20년동안 저 대신 왈순아지매가 세상을 산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中央日報 사회면의 붙박이 인기만화「왈순아지매」의작가 鄭雲耕화백(60)은 왈순아지매가 자신의 분신이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74년 12월26일부터 유머와 위트로서 세상사를 요리해온 鄭화백의 왈순아지매 6천회 돌파기록은 한국신문만화사상 유례없는 대기록이다.말이 6천회지 20년 가까이 날마다 새로운 소재로 정치.경제.사회의 온갖 세태를 담아내는 일은 鄭화 백에게 그야말로 피를 말리는 것과도 같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시사만화를 그리는 것은 벽돌쌓기와는 달리 매일매일 빈종이 한장을 앞에 놓고 새롭게 시작하는 일입니다.』 한번 쓱 훑어보는 짧은 순간에 독자로 하여금 세상사를 깜박 잊고 웃음속으로 빨려들게 하는 아이디어를 짜내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엄청나게 견디기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라는게 그의 솔직한 고백이다.
마감시간이 다가오는데 뾰족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는 안절부절 못한채 마치 피가 졸아드는 듯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24시간이 작업시간」이라는 정화백의 하루일과는 4컷만화에 담을 아이디어 짜내는 일로 꽉 채워져 있다.아침 7시 출근해 조간신문을 보는 것으로 시작하는 이 일은 잠자리에 들 때까지 계속되는게 보통이다.잠자리에 들면서도 머리맡에 종 이와 펜을 놔두고 얕은 잠속에서 중간중간 일어나 꿈속 일까지 메모할정도다. 다음날 그릴 아이디어가 분명하지 않을 때는 퇴근하면서신문사가 있는 서소문에서 집이 있는 여의도까지 무작정 걷기도 한다. 걸어가면서 사람들 얼굴도 유심히 보고 자동차물결도 지켜보면서 머리속을 스치는 생각의 파편들을 주워모으는데 불현듯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자리에 서서 급한대로 손바닥에라도 적어놓는게 습관이 됐다.
鄭화백의 이같은 아이디어짜내기를 통해 포장되는 왈순아지매의 웃음은 무엇보다 서민들에게 친근감을 안겨 주는 것이 특징이다.
퉁퉁한 허리에 대충 넘긴 머리에서 세련된 도시풍의 멋은 느낄수 없지만 어디서나 흔히 마주칠 것같은 푸근한 이웃 아주머니의느낌을 주는게 왈순아지매의 변치않는 매력이다.
언제봐도 구수한 매력을 지닌 왈순아지매는 鄭화백이 고심끝에 찾아낸 실존인물을 모델로 한 캐릭터다.65년 여성잡지『여원』에서 가정만화를 청탁받고 2개월간 서울시내를 헤매던 鄭화백은 어느날 우연히 사촌형수에게 놀러왔던 한 경상도 아주 머니의 모습에서 왈순아지매의 이미지를 찾아냈다.
억세면서도 정이 깊고 또한 사리가 분명한게 鄭화백이 그리는 왈순아지매의 성격이다.왈순아지매의 모델이 된 月仙이란 이름의 아주머니는 지금은 작고했지만 자신이 모델이라는 사실을 알고부터는 누구보다도 열렬한 왈순아지매 독자가 됐다.
『왈순아지매 모습은 변하지 않았지만 세태변화에 따라 왈순아지매의 역할은 조금 달라졌습니다.지금은 왈순아지매가 소심하면서 평범한 회사원인 가장 밑에서 댓살짜리 아들과 함께 살고 있지만처음 등장할 때 왈순아지매의 배역은 가정부였습니 다.』 왈순아지매의 가정부배역은 70년대가 지나면서 가정부가 점차 사라져감에 따라 지금의 주부역할로 바뀌었다.이 때문에 오래된 독자들은요즘도 정화백에게 전화를 걸어『가정부가 부인자리를 차지했다』며항의하기도 한다고 한다.
鄭화백은 사회의 청량제같은「왈순아지매」를 통해 많은 독자들의사랑을 받았지만 유신과 5共 같이 살벌했던 시절에는『라면 먹으러 간다』며 부지기수로「남산」에 불려갔다.
또 기관원들이 신문사내에 상주했던 그 시절에는 네칸 만화중 한칸이 빈채로 나오는 웃지못할 일도 있었고,내용이 문제가 될듯싶으면 일부러 마감시간 늦게 슬그머니 원고를 넘기고 뒷문으로 신문사를 빠져나온 일도 있었다고 한다.
다른 신문과의 경쟁도 시사만화가를 압박하는 스트레스지만 독자들의 격려나 날카로운 추궁 역시『왈순아지매를 사회의 거울로서 항상 바르게 설수 있도록 일깨워준 지주였다』고 鄭화백은 말한다.시사만화가로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지금도 날마 다 샘솟는 아이디어를 퍼올리는 정화백이 만화에 입문한 것은 고등학교때다.
동래 鄭씨 石門公派 종가에서 태어난 鄭화백은 만화가의 길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집안의 반대를 뿌리치고 대구피난시절『코주부』작가 김용환씨를 만나 만화의 기본기를 익혔다.
대학시절 학비를 거의 만화고료로 충당했던 鄭화백은 30대 독자라면 당연히 보고 자랐을『진진돌이』『또복이』등 아동만화에서부터 가정만화까지 다양한 장르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여왔다.
『왈순아지매는 이제 30세쯤 되는데 미술을 공부한 딸에게 대를 잇게 하고싶은 생각도 있습니다.』 그러나 鄭화백의 은근한 기대와는 달리 근래 십수년간 휴가 한번 가지 못하고 날마다 긴장과 스트레스 속에 파묻혀 사는 정화백의 모습을 보고는 딸이 한마디로『그런 일은 싫다』고 거절했다고 한다.
정화백이 말하는 시사만화의 요체는「재미」다.정화백은 일상에서는 남을 잘 웃기지 못하지만 엄청나게 많은 책을 섭렵하면서 웃음을 캐낸다.30년 가까이 왈순아지매와 살아온 鄭화백은 요즘 헬스클럽을 찾아 땀을 빼는 일과 가끔 산에 오르는 일을 유일한즐거움으로 삼고 있다.
〈尹哲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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