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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뇌 속을 손금 보듯 … 23. 암벽 등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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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1956년 설악산 울산바위 암벽 등반을 마치고 기념 사진을 찍었다. 오른쪽 둘째가 필자.

서울대 공대 1학년 때 빠져든 등산은 내 혼을 쏙 빼놓을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산 정상에 서면 천하를 얻은 듯한 그 쾌감은 어느 곳에서도 찾기 어려웠다.

 등산 입문의 계기가 된 도봉산은 암석으로 이뤄진 봉우리가 많다. 만장봉, 신선봉, 선인봉, 우이암, 주봉 등 제각각의 자태를 뽐내는 암석 봉우리는 그저 보는 사람은 물론이고 암벽 등반을 좋아하는 나에게 더없는 기쁨을 줬다. 그 당시에는 암벽등반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등반용 장비도 변변찮았을 뿐 아니라 위험했기 때문이다.

 나는 설악산 울산바위 등 국내에서 알아주는 암벽을 대부분 타봤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에 남는 게 도봉산 주봉을 정복했을 때다. 주봉은 기둥처럼 생긴 직벽 돌로 이뤄져서 붙여진 이름이다. 포대 능선을 따라 우이동 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기둥처럼 우뚝 솟아 있다. 그 높이가 60m 정도여서 장대하기 그지 없다.

 대학 1학년 때 주봉 등반에 도전했다. 주봉 밑에서 올려다보는 직벽 코스는 조그마한 나를 압도했다. 등산 장비는 경성제대 산악반 학생들이 쓰다가 놔두고 간 것들로 좋은 것들이었다. 쇠고리인 카라비나, 쇠고리를 끼워 밧줄을 걸 수 있는 하켄과 망치를 들고 한발한발 오르기 시작했다. 헬멧도 쓰지 않은 채였다.

 주봉 등반에서 가장 어려운 코스가 꼭대기 못 미쳐 바위가 양쪽으로 갈라지는 지점이다. 손과 발을 의지할 곳이 마땅찮기 때문에 그 지점에서 몸을 잽싸게 돌려야 한다. 거기서 10여m를 미끄러져 떨어지기를 서너번했다. 죽기 아니면 살기식으로 매달려 간신히 올라갔다.

 주봉 정상에 올라서자 거기에서는 정복자만 볼 수 있는 ‘진객’이 기다리고 있었다. 유리병 두개였다. 그 속에는 정상을 밟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흰 종이에 적어 넣어 놓았다. 병은 뚜껑이 닫힌 채, 바위 틈새에 거꾸로 세워져 있었다. 빗물이 스며 들지 않게 하려는 배려였다. 이름의 대부분은 경성제대 학생들이었다. 거기에 나도 이름을 써 넣었다. 그 때 병 속에 들어 있는 이름은 나를 포함해 10여명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서울대 공대생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서울대 공대생 중 처음 주봉 정상을 밟아봤지 않았나 생각한다.

 주봉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자 동료들이 환호성을 올리는 것 같았다. 지금은 주봉을 오르는 코스가 여러 개 있다고 하는 데 그 때는 두 개가 있었다. 나는 그 두 코스를 모두 올라봤다. 내가 주봉을 정복함으로써 학교에서 유명세를 탔다. 전문 산악인들이 에베레스트를 정복하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지만 학생 사이에서는 ‘암벽 등반 도사’ 쯤으로 통했다. 바위에 착 달라붙어 올라갔던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짜릿하다. 암벽 등반은 직접 해보지 않고는 그 맛을 상상하기 어렵다.

 죽기 살기로 암벽 등반에 매달려 살았지만 다행히 나와 같이 다닌 동료들 가운데 부상자는 없었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조장희 <가천의대 뇌과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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