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인터뷰>한호선 농협 중앙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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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농협중앙회 韓灝鮮회장은 우루과이라운드(UR) 농산물 협정과 관련,수년동안 쌀시장 개방만은 결코 안된다며 나라안팎을 불도저처럼 누비고 다녔다.그러나 UR협정이 결국 개방 쪽으로 결론이나자 요즘은 여론을「농어촌살리기」쪽으로 모으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UR체제 아래에서 곧 밀어닥칠 농산물 개방 파고에대응,범정부차원의 장단기대책을 이끌어내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것이다.
한쪽에서는 UR반대시위가 벌어지고,다른 한쪽에서는 농어촌대책마련 작업이 한창인 가운데 韓회장을 만나 농업과 농민을 살리는길이 무엇인가에 대해 의견을 들어보았다.그는 高麗大 법대를 나와 장래가 보장되는 다른 직장을 마다하고 강원도 楊口농협 말단서기로부터 출발,30여년만에 중앙회 회장이 된 다소 색다른 경력의 소유자다.
-농협 분위기가 UR협정타결 이전과는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쌀개방 결사저지」현수막도 안보이구요.
『UR협정이 우리 뜻과는 달리 만족스럽지 못하게 타결됐지만 현실은 현실입니다.더이상 실의와 좌절속에 빠져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농민을 일깨워 앞으로 나가기위해 방향 전환을 모색하고 있습니다.먼저 농협중앙회 건물에 붙어있던「쌀개방 결 사저지」현수막을 떼어버리고 그대신「농촌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身土不二」를 새로 달았습니다.우리들의 각오를 새롭게 하기 위해 1천4백명 조합장들에 대한 1박2일 교육을 실시,지난달말 끝냈습니다.또 정부와 국민에 대해 농업.농민문제에 좀더 관심을 가져줄 것을 호소하는데 힘을 쏟고 있습니다.』 -지난 일입니다만 쌀시장 개방이 그렇게 예상 못했던 일입니까.
『저도 농협중앙회장으로서 개방을 막기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당시 둔켈 관세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사무총장, 칼라힐스 美무역대표부(USTR)대표,세계각국의 농민대표들과 만나면서 국제적 현실이 냉엄하다는 것도 느꼈습니 다.그러나작년 12월 제네바에서 막바지 협상이 열렸을때 우리가 좀더 노력했으면 지금보다는 더 좋은 결과를 얻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렇게 된데에는 농협을 비롯한 농민단체,일부여론지도층이「쌀시장 개방 불가피」에 대한 논의 자체를 봉쇄했기때문이라는 일부 지적도 있습니다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저는 농민단체 회장을 맡고 있지만 대안을 내놓고 반대했지 무조건적인 반대는 하지 않았습니다.심지어강연에 나가 미국과의 통상마찰을 줄이기 위해 이왕 외제車를 타시려면 벤츠나 볼보 같은 유럽 차보다는 미국 차를 타라고 권하기도 했습니다.우리가 반대의 소리를 높였던 것은 정부에 대해 협상력을 갖춰라,제발 지금부터라도 농촌에 대한 투자를 늘려 개방에 대비하라는 압력이었습니다.』 -어쨌든 UR협정이 타결됐고앞으로의 과제는 우리 농업이 어떻게하면 경쟁력을 갖추느냐는 것인데 정부가 최근 내놓은 경쟁력 강화대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청와대에 농수산 수석비서관과 전문 비서관 3명을 두었습니다.이것은 조직의 원리로 볼때 파격적인 것입니다.또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농어촌발전위원회가 지난 1일 발족되는등 정부가 과거와는 다른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일부에서는 농어 촌특별세 징수방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있지만 우리 농업으로서는 이번이 마지막 기회인 만큼 이 자리를 빌려 국민 모두의 이해와 협조를 호소하고 싶습니다.』 -농어촌특별세로 걷을 1조5천억원이 큰 돈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농민 5백70만명으로 계산하면 1인당 1년에 26만3천원꼴에 불과한데요.
『그렇기 때문에 투자 우선순위가 중요합니다.여기저기 조금씩 나눠 쓸 것이 아니라 우선순위.완급순위를 가려 집중적인 투자가필요합니다.예를들어 기계화 영농을 위해 논뿐만 아니라 밭에 대한 경지정리가 시급하고 고도의 하이테크 농업을 이 루기 위해 기술개발 투자를 서둘러야 합니다.또 유통구조가 생산구조 못지않게 중요한 만큼 과감한 투자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정부가 마련중인 대책을 보면 앞으로는 농업문제보다 농촌문제로 풀어가겠다는 것이 골자인 듯 합니다.이를위해 도시와 기업의 자본을 끌어들이고 농지에 대한 각종 규제도 과감히 풀겠다는 것인데 이에대해서는 어떤 의견을 갖고 있는지요.
『在村脫農을 말하는데 일리는 있습니다.그러나 이는 농업을 살려나가면서 병행추진돼야 합니다.농업을 무시하는 농촌정책은 자칫균형감각을 잃게 됩니다.농지에 대한 규제완화도 그렇습니다.많은농민들이 이를 바라고 있지만 너무 많이 풀 경우 농업의 기반이흔들릴 우려가 있습니다.』 -농업인구는 자꾸 줄어드는데 농협을비롯한 농민단체는 오히려 비대해져간다는 비판의 소리도 나오고 있는데요.
『사실 그 문제는 제가 먼저 제기했던 것입니다.농가인구는 계속 감소하는데「넥타이 부대」는 늘어나 문제가 아닐수 없습니다.
단체만 해도 60년대에는 농촌지도소.농협.수협.농어촌개발공사등4개에 불과했는데 요즘은 15개가 넘습니다.민간 단체가 많아 정부로서도 정리에 힘이 들 것으로 생각됩니다.』 -농협의 기능.조직등에 대해서도 개선의 여지가 있지 않을까요.
『저희가 정부의 지원없이 정책사업을 대신 해주는데 1년에 1조5천억원이 들어갑니다.그런데도 농협이 하는 일이 잘 알려지지않아 오해를 살때가 가끔 있습니다.예를들어 요즘 농산물 값이 많이 올랐는데 농협이 가격안정에 협조를 안한다는 얘기를 들었을때는 정말 화가 났습니다.저희들은 産地농민들에게 사정을 해 좋은 물건을 가져다 가장 싼 값에 공급하고 있는데 이해가 부족한것 같습니다.
***□…… 타락선거 일부분 ……□ 또 조합장 선거가 타락 양상을 보이고 있지 않느냐는 비판도 있는데 1천1백개 조합의 선거에 문제가 된 곳은 10여군데에 불과합니다.조합장 선거 투표율이 87.5%나 되는데 이렇게 조합원들의 적극적인 참여속에이루어지는 선거도 우리 나라에는 별로 없습니다.』 -앞으로 농협이 해나가야할 일은 무엇인지요.
『이제까지는 농민들이 생산한 물건을 어떻게 하면 많이 팔아주느냐에 중점을 두어왔는데 앞으로는 생산지도와 유통구조 확립에 신경 쓸 계획입니다.이를위해 농협 직원을 재배치하는 조직개편도생각하고 있습니다.또「농협청년부」를 만들어 농촌에 서 일할 사람들을 중심으로 조직을 활성화하겠습니다.한마디로 농촌에 꼭 필요한 일 가운데 정부가 할수없는 일를 골라 저희가 맡아 해나갈계획입니다.』 〈韓鍾范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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