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시각>상품화에 떼밀린 문화의 본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요즘 국제화니 세계화니 하며 신문.잡지에 온갖 논의가 무성하다.문화라는 것도 이에 따라 전례없이 비상한 주목을 받고 있다.UR이후의 국제경쟁력 확보라는 초점에 맞추어서 그런 것 같다. 이 경제절대우선의 시대에「문화」라는 단어가 새삼 들먹여지는것도 신기하다면 신기하다.이제 문화와 경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긴밀한 공조체제를 이루어야 한다.당연한 소리로 들린다. 세상만사를 기본적으로 경제가 결정짓는다고 단정하진 않더라도 장기적인 차원에서 경제가 정치보다 더 깊숙이 문화를 좌우하는 것만은 부정하기 힘들다.원님덕에 나발분다는 옛말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속담이 더 절실하게 다가오는게 현실이 다.
이 문화와 경제라는 문제를 놓고 요즘 이야기되는 방식이 몇가지 있다.이를테면 우리도 우물안 개구리 신세에서 벗어나 선진국들의 모범에 따라 국제적 호흡의 초현대적 예술,문화생산을 촉진해야 한다는 요청이 그 하나다.촌티를 벗고 소위 개방시대에 걸맞게 재빨리 적응해야 살아 남는다는 말이다.문화체육부에서 국가적 정책과제의 하나로 내세운「문화산업」(문화사업이 아님)의 육성이라는 것도 이런 뜻에서 비롯한 것같다.주로 영화.텔리비전.
비디오.디자인등 신식매체에 해당되는 이야기다.
이와 반대로 「身土不二」류의 토착문화 방어론이 있다.「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서양의 한 문학자의 말이 우리 시대,우리 현실에도 딱 들어맞는 만고불변의 진리라는 믿음과통한다.대체로 구식매체의 예술,미술.음악.문학. 무용등을 염두에 둔 이야기다.
이 두가지의 비교적 소박한(?)생각보다 더 최신의,보다 교묘한 변종의 논의로 다음의 것이 있다.즉 기본적으로「身土不二」의문화론에 「국제화」라는 최근 이슈에서 나온 문화의 부가가치론을슬며시 접합한 것이다.말하자면 우리의 전통예술 ,전통문화에 기막힌 노하우가 감추어져 있으니 이를 현대적 기술과 방법으로 개발.세련.포장.선전해 국제시장에 진출시키면 승산이 없지않아 님도 보고 뽕도 딸 수 있다는 것이다.그럴듯 하지만 우려할만한 점들이 많다.
국내 유수 문학작품들을 보다 많이 번역,해외에 소개해 노벨상을 따내자는 유치한 발상 따위는 제쳐놓더라도 문화.예술품목의 해외진출이라는 것이 일반 산업제품들을 개발.생산.수출하는 문제와 동일선상에 놓일 수는 없다.그리고 해외진출이나 국제경쟁력 확보라는 것이 문화에 있어서 과연 진정한 문제라고 볼 수 있을는지도 의문이다.
도처에서 빈번하게 문화산업이라는 말이 입에 오르내리지만 정작핵심이 가려져 있다.
문화가 무엇인지,그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본질적 질문,그리고 문화가 자본주의적 생산및 소비방식에 어떻게 결합돼 있는지 하는 점들은 이미 정답이 내려진 순수이론상의 문제처럼 넘어가고 국제경쟁력과 관련된 실용적 측면만이 흔히 강조되고 있는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