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장/공해현장 고발:5(우리 환경을 살리자:1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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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산림 훼손… 생태계 파괴 대책없나/농약 안뿌리는 잔디개발 서둘러야
경기도 용인군 원삼면 죽릉리 구봉산 허리자락에 자리잡은 T골프장.
병풍같이 둘러싸인 절개지 곳곳에 보이는 암반들은 아직까지 회색의 나신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으나 수십년생 아름드리 수목을 훼손하며 심은 잔디들은 제법 뿌리를 내린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골프장 주변에 위치한 목신리·죽릉리 주민들은 91년 산사태 이후 『또다시 산사태가 일어나 애꿎은 목숨을 앗아갈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쉽사리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또 마을 주민들은 골프장 건설 이전까지만해도 구봉산 곳곳의 무성한 소나무·잣나무 사이에서 때를 맞춰 피었다 지곤 하던 뺑때·진달래·동백 등과 그 흔했던 노루·토끼·꿩 등을 더이상 볼 수 없게 된 아픔도 가슴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다.
90년 골프장 건설을 위한 발파작업이 시작되자 구봉산 일대의 생태계는 철저히 파괴된 것이다.
특히 이 지역 주민들은 1백40만평방m 부지에 27홀 규모의 골프장을 건설키 위해 준보전임지 78만1천여평방m와 보전임지 49만6천평방m 등 1백27만7천여평방m의 산림이 훼손되면서 골프장 건설에 따른 최대 피해를 보았다.
90년 9월 폭우가 내리면서 골프장 건설현장에서 산사태가 발생,후평마을 가옥 5채가 부서지고 농경지 5만여평이 매몰됐다. 91년 7월에는 골프장 주변 2㎞에 쏟아진 집중호우로 3개 마을 주민 9명이 숨지고 가옥 46채가 완파 또는 반파됐으며 1백24.9㏊의 농경지가 매몰되거나 유실됐다.
골프장 건설이 산사태의 직접적 원인이 아닐지라도 개연성이 인정된다는 법원의 피해배상 판결이 내려졌고 골프장측이 3곳에 7천8백4평방m의 침사조를 설치하게 돼있는 환경영향평가를 무시하고 규정의 6.4%인 5백평방m만 만든채 공사를 강행한 사실도 밝혀졌다.
환경공학자들도 『잔디에 비해 보수력(물을 머금는 능력)이 5배정도 뛰어난 수목이 그대로 있었을 경우 산사태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히는 등 골프장 건설이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사실이 입증된 것이다.
용인군내 골프장의 총면적은 여의도의 8.8배인 2천8백52만4천여평방m로 용인군 전체면적의 5.5%.
용인군청은 물론 인근 주민들도 일단 골프장이 완공되고 나면 건설과정에서의 격렬한 반대와는 달리 상당히 원만한 관계로 발전한다. 군청측은 골프장이 신설되면 과표의 15%인 취득세를 징수하고 매년 종합토지세와 재산세를 지방세로 거둬 연간 수십억원씩의 세수확보가 가능,골프장건설을 내심 바라고 있다.
또 골프장 인근 지역의 일거리가 없는 노약자와 부녀자들은 농약살포와 제초작업때 하루평균 1백여명씩 취업하는데다 일부 골프장은 사무직 등에 주민을 우선 채용하며 지역차원의 민원을 해결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주민 박병옥씨(54·용인군 원삼면 목신리)는 『산사태로 주민들이 엄청난 피해를 봐 아직도 두려운 마음은 있으나 골프장이 개장된후 주민들에게 일거리가 생기고 민원이 발생치 않도록 골프장측에서도 협조를 하는데다 이렇다할 환경피해가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편 국내에서는 골프장 운영에 따른 환경오염을 집중적 추적 조사한 일이 없어 단정하긴 이르지만 일반적으로 골프장이 대기정화능력을 줄이고 수질을 오염시킬 수 있다는게 학계의 공통적 견해다.
즉 골프장내 잔디는 평균 5㎝에 불과한데 기존 수목들은 5∼8m여서 광합성능력이 50분의 1 정도로 감소,그만큼 산소공급량과 탄산가스흡입량이 줄어들어 자연의 대기자정 능력을 감소시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독일은 잔디육성을 위해 뿌리고 있는 질소비료에서 자동차 배기가스와 같은 질소산화물이 배출된다고 해 5㎝ 이상 자라 깎은 잔디를 밀폐용기속에 일정기간 보관한뒤 처리하는 제도를 90년대이후 보편화시켰으나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관심조차 갖고 있지 않다.
환경처가 지난해 전국 80개 골프장을 상대로 상반기중 농약사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 평균적으로 골프장마다 5백92.1㎏을 사용,지난해보다 7.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농약의 대부분이 4∼9월중에 집중적으로 살포돼 골프장내 토양과 인근 농경지를 오염시킬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농약오염과 생태계 파괴를 막기 위해 일본은 90년대 들어 그린과티 등 극히 일부에만 외국산 잔디인 벤트그라스를 심고 나머지는 농약을 쓰지 않아도 되는 자생식물을 길러 철새가 날아들고 개구리가 튀어나오는 「생태골프장」을 개발,인기를 끌고 있다.
서울시립대 이경재교수(45·조경학과)는 『토지이용의 효율성 측면에서 골프장 설립을 무조건 막을 수는 없으나 건설과정에서 빚어지는 산림훼손과 생태계 파괴를 최소화시키는 동시에 농약으로 인한 수질오염 등을 막을 연구가 본격화 돼야 한다』고 밝혔다.<이철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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