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실명제에도 성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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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금융실명제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張玲子씨 사건을 지켜보며 새삼 이같은 의문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上京」한 근로자들은 고향 부모에게 생활비 몇푼 보내는데도 일일이 주민등록증등을 내보여야 한다.당연한 절차지만 번거롭고 짜증스럽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런데 은행등 금융기관이「특별히 모시는」사람들은 실명제와 관련해서도 여전히「특별 대접」을 받는 경우가 있으니 의아스러운 일이다. 큰 예금주에 대해 깍듯이 귀빈 대접하는 것은 열심히 일하려는 금융기관 임직원의 당연한 업무태도지만 그 대접이 지나쳐 편법과 불법으로 손님을 모신다면 큰 문제다.
이번 張씨 사건을 보면 고객이 몇억원을 들고 은행에 나타났을때 그 은행에선 알아서 남의 이름을 빌려 주었다(동화은행 삼성동출장소).
1억원을 예금해도 그 40배나 되는 40억원을 선뜻대출해 준곳도 있었다(삼보상호신용금고.서울소재).
예금주도아닌 제3자가 도장없이 통장만 들고 왔는데도 30억원이나 되는 예금을 선뜻 내주기도 했다(서울신탁은행 압구정동지점). 특히 서울신탁은행 압구정지점의 경우 은행 문을 닫을 시각인 오후4시30분에 찾아와 예금했는데,1시간 뒤인 오후5시30분에 그것을 그대로 빼내 주었다.더구나 10억원의 예금이 모두현금으로 들어온 것도 아니어서 자기앞수표로 예금된 액수는 미처정식으로 입금처리도 되지않았는데 내주었다.
이들 금융기관들은「아는 고객」「큰손 고객」앞에서는 업무규정은물론 금융실명거래에 관한 긴급명령도 안중에 없었다.
창구에서 고객을 맞는 금융인들은 실명제를 지키는 파수꾼들이라할수 있다.큰 손의 예금을 내주는 것이「관행」이라는 구차한 변명은 더 이상 늘어놓지 말고,선진국처럼 실명제를「관행」으로 정착시키는데 묵묵히 힘쓰는 것도 요즘 유행하는「국 제화」의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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