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승의 수난(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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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변강쇠가 장승을 뽑아다가 장작패듯 박살을 내 불 땐 죄로 전국 장승들의 동티를 입고 죽는다는 판소리 『변강쇠타령』은 그 질펀한 외절과 해학으로 우리 서민문학의 걸작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장승은 원래 우리 민속신앙의 대상으로 악귀를 몰아내고 사기를 진압해 재앙으로부터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이었다. 천하에 몹쓸 음남 음녀 변강쇠와 옹녀가 그토록 영험했고 신성시하는 장승을 땔감으로 이용했으니 장승들의 진노는 당연한 것이며,이들이 혹독한 징벌을 당한다는 것은 당시의 서민들에게는 일종의 권선징악적 카타르시스를 주었을만하다. 오늘날에 외서 장승은 외국인을 위한 관광상품으로 전락한지 이미 오래다. 그 투박한 토속미가 외국인의 호기김을 끌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한 상술이 이를 민예품으로 양산하기에 이르렀다. 본래의 신앙적 의미 따위는 이젠 사라진 것이다.
이러한 장싱이 지난 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전국 1백70여군데에 건립됐었다. 뒤늦게 다시 민간신앙물로 「부활」한게 아니라 올림픽을 구경온 외국인들에게 눈요깃거리를 제공한다는 관광진흥적 차원의 발상이었을 뿐이다. 어느 대학에선 「민족통일 열망의 상징물」로 캠퍼스안에 장승을 세우기도 했다.
최근 이 무고한 장승들에게 수난이 잇따르고 있다. 얼마전에는 대학 캠퍼스에 세워진 장승이 「샤머니즘적 우상」이라는 이유로 학내 모 종교서클에 의해 톱질을 당하더니 종내는 철거되기에 이르렀다. 엊그제는 서울 장승백이에 세워져 있는 장승이 밤사이에 전기톱으로 밑동이 잘린채 넘어졌다. 3년여전 동작구청과 지역주민들이 이 지역 상징물인 장승을 다시 세우려고 할 때부터 「전통문화」와 「우상숭배」라는 논쟁에 휘말렸던 바로 그것이다. 편협하고 배타적인 종교적 독선은 민속문화와 미신을 구분하는 분별력을 흐리게 한다. 이러한 분별력의 마비는 결국 조상을 기리는 제례의식마저 우상숭배로 매도함으로써 민족내부나 가족간에 문화적 충돌과 불화를 초래하고 있다. 전통문화의 명백을 잇자는 것은 몽매했던 과거로 돌아가자는 고집이 아니다. 사라져가는 우리 정신문화의 뿌리를 보존하고 계승·발전시켜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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