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최초로 뇌성마비자 합격/임산공과 정훈기군 재수끝 영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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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손가락 새에 볼펜끼고 답안작성 고투/출생때 사산아로 오인… 매장직전 소생
서울대 개교이래 최초로 뇌성마비 장애인이 합격했다.
태어날때부터 뇌성마비로 양손과 오른쪽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하고 볼펜도 제대로 못잡는 정훈기군(19·서울 강서구 화곡동59)이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 임산공학과에 당당히 합격한 것이다.
정군은 둘째손가락과 셋째손가락 사이에 볼펜을 끼워 답안지를 작성해야 하는 고투끝에 영광을 차지,남다른 감동을 주고 있다.
지난해 서울 화곡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농학과에 도전했다 고배를 마신뒤 후기 K대 수학과에 수석합격했으나 1학기를 마치고 휴학,재도전해 끝내 뜻을 이룬 것이다.
그는 1차 수능시험에서 예상(1백70점)보다 낮은 1백63.4점을 받아 2차시험에 열의를 다했으나 어렵게 출제되는 바람에 아예 점수를 알아보지도 않고 본고사 준비에 매달렸다고 했다.
견인업을 하는 정용정씨(45)의 남매중 맏이인 정군의 삶은 태어난 직후부터 고난의 연속이었다.
첫 울음을 터뜨린뒤 꼼짝도 하지않아 죽은줄로 안 부모가 포대기에 싸 매장하려 했으나 겨울이라 땅이 파이지 않아 기다리던중 4시간만에 숨을 쉬기 시작한 것.
그러나 정군이 뇌성마비 환자임을 안 것은 훨씬 뒤였다.
서너살이 되도록 걷지도 못하고 입이 떼이지 않는 것을 이상히 여긴 부모가 정군을 병원으로 데리고 가 뇌성마비환자라는 말을 듣게 됐던 것.
그때부터 단란하던 정군의 집에는 한숨의 연속이었다.
하나뿐인 아들의 병을 고치기 위해 전국의 용하다는 병원은 모두 찾아 헤매면서 집까지 팔아 지금은 14평짜리 두칸방에 전세로 살고 있다.
밖에 나가면 놀림감이 되기 일쑤였고 국교에 입학한 뒤에는 친구들의 놀림을 못견뎌 입버릇처럼 『죽고싶다』고 해 부모의 가슴을 찢어지게 했다.
그러나 중학교(화곡중)에 들어가면서 정군은 「곱은손」으로 책과 씨름,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늘 상위권을 유지했고 성격도 밝아졌다.
『비록 몸은 성치 않지만 방안에 틀어박혀 하는 일은 싫어요. 그래서 오히려 실험실습 등 활동을 요구하는 임산공학과를 지원했어요.』
정군은 더듬거리는 말투로 『대학졸업후 산림공무원이 돼 우리 산을 푸르게 하는데 앞장서고 싶다』며 『저의 영광을 계기로 장애인들이 용기를 갖고,장애인들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조금이라도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정태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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