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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환경을 살리자(물비상… 이대론 안된다: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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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수질개선 연구비 연 50억원뿐/낡은 정수기술… 선진국의 30% 수준
「정수=응집여과,폐수=활성슬러지」.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 상·하수도 정화기술공식의 전부다. 발암물질이 들어 있어도,유해한 중금속이 섞여 있어도,병원성 미생물이 우글거려도 항상 적용되는 공식은 오직 이것뿐이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수질이 훨씬 좋은 미국은 오염도·오염물질의 종류에 따라 「입상활성탄법」 「오존처리법」 등 4∼5종의 정수처리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또 일본·구미 등에서는 폐수를 안전하게 처리하기 위해 「막분리」니,「A2O 공법」이니 하는 첨단기술을 이용하고 있다. 첨단 정·폐수처리기법을 도입해도 부족할 만큼 수질이 극도로 악화돼 있는데도 수십년전 낡은 기술인 「응집여과」 「활성슬러지」만을 무슨 주문처럼 달달 외고 있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왜 이런 턱도 없는 기술이 버젓이 수질정화에 사용되고 있을까. 대답은 간단하다. 기술도 없고,의지도 없기 때문이다.
92년 국립환경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선진국 기술수준을 1백으로 할 때 우리는 정수처리 30,난분해성 오염물질 처리 25,소규모 오·폐수처리 35라는 엄청난 기술격차를 보이고 있다.
이같은 기술상의 열세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분석기술이다. 물속헤 흔히 녹아들 수 있는 화학물질은 3백여종. 그러나 우리가 이중 제대로 분석해낼 수 있는 것은 1백종도 안된다. 건설기술연구원의 오모박사는 『낙동강물 오염사건이 일어난지 보름이 지나도 원인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은 분석기술의 낙후가 큰 원인중 하나』라고 말했다.
왜 이처럼 수질관련 기술이 형편없는가. 한마디로 당국이 수질의 과학적 관리를 전적으로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환경처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환경기술 개발 연구비 투자는 총 1백65억원. 이중 수질개선이 관련된 연구비는 약 30%인 50억원정도로 GNP의 0.002%에도 못미친다. 고선명(HD)TV와 안심하고 마실 수 있는 물중에서 하나를 고르라면 대부분 물을 택할 것이다. 그런데 상공자원부·과기처·체신부 등이 HDTV 개발에 투입한 돈은 지난 3년동안 정부예산 4백억원을 포함,모두 1천억원으로 물연구비와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전국민의 맑고 깨끗한 물을 마시기 위한 투자가 HDTV라는 일개 프로젝트의 몇분의 1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될 것인가. 예산의 절대적인 부족보다 당국이 수질개선이 그만큼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겠다.
한 출연연구기관 관계자는 『수질 등 환경관련기술 개발에 대한 투자 우선순위는 언제나 맨 꼴찌였다』며 『이래서야 어찌 환경기술이 개발되겠느냐』고 반문했다.
한 전문가는 『국민복지는 물론 그린라운드 등에 대비한다는 차원에서도 환경을 과학적으로 관리한다는 의식전환이 필요하다』며 『관련기술 개발에 대한 투자가 시급히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김창엽기자>
◎전문가의견… 박중현 서울대공대 교수/오염정도 따른 이원급수시스팀 적용을/주방용 수도 정수기 부착의무화도 방법
우리나라의 물관리 실태와 관련,포괄적으로 지적할 수 있는 문제중 하나가 과학적 관리가 없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물관리가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예컨대 얼마전 정부가 서둘러 발표한 수질·수량관리의 2원화같은 방침도 비과학적 발상의 한 본보기가 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연간 기준으로 1인당 하천강수량이 우리의 약 10배인 3만4천t에 이른다. 이를 바꿔 말하면 미국과 우리의 1인당 폐수배출량이 같은 수준이라도 유해물질을 포함한 오염물질의 농도가 우리가 10배 정도 높다는 뜻이다. 양과 질을 떼어 생각할 수 없는 단적인 예다.
정·폐수 처리에 어떤 기법을 사용하느냐를 결정하기전에 거시적으로 살펴볼 또 하나의 문제가 이원급수시스팀의 적용이다. 상대적으로 물이 맑은 상류는 현재의 정수시스팀을 사용하더라도 오염도가 심한 하류의 물은 음용수가 아닌 잡용수로 사용하고 하류 식수는 따로 공급하자는 것이다.
한 예로 남한강처럼 상류에서 하류까지 정·폐수가 아홉번이나 반복되는 수계에서 현재와 같은 하류 정수시스팀은 제 구실을 할 수 없다. 이 경우 하류의 정·폐수처리는 막분리와 같은 고도의 기법을 사용해야만 중금속 등을 안심할만한 수준으로 걸러낼 수 있을 것이다.
환경기술이 매우 낙후한 우리 실정에서 당장 적용 가능한 또다른 물관리 대안은 수도꼭지에 정수기를 설치하는 것이다. 국가가 의무적으로 각 가정의 주방 수도꼭지에 정수장치를 부착해주면 유해물질의 인체유입을 차단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1인당 하루 물소비량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3백∼5백ℓ쯤 된다. 이중 음용수는 10% 수준이므로 이같이 음용수와 다른 용도의 물을 분리해 관리하면 비용도 훨씬 적게 들면서 안전한 물을 마실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당국은 유럽국가들처럼 하상의 복류수를 식수로 공급하겠다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으나 실현성이 없는 얘기다. 우리의 경우 하상주변에 모래와 자갈이 많기 때문에 복류수가 고일 수 없는 것이다. 실상을 과학적으로 정확히 파악하고 기술적으로 응용가능한 정부의 수질대책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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