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촌특별세 거두는 순서(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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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는 농어촌특별세를 목적세로 징수할 계획을 준비중에 있다. 빠르면 7월1일부터 시행에 들어간다는 농어촌특별세는 구체적인 사업계획에 앞서 재원마련부터 서두르고 있는 것이다.
우리 농업이 구조적인 위기상황에 처해 있고,특히 우루과이라운드(UR)의 타결로 더욱 절박해진 것은 분명하다. 이같은 농촌의 위기상황을 방치할 수 없다는데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대통령의 농어촌특별세 구상은 농민들에게 정부의 지원의지를 보여줌으로써 농촌의 급격한 붕괴를 막자는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농어촌특별세를 통해 추가투자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발상은 다음 몇가지 점에서 신중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본다.
첫째,국민에게 막대한 부담을 요구하는 중요한 정책결정의 순서가 잘못되었다는 점이다. UR이후 농업대책의 청사진이 먼저 나오고,그것에 바탕해서 농업의 경쟁력을 높이고,구조개선을 위한 투자의 우선순위와 소요액을 산정한후에 재원조달 방법을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간 1조5천억원이나 되는 막대한 세금을 더 거두는 일을 너무나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
둘째,국제화로 이득을 보는 산업과 계층에서 피해를 보는 농업과 농민에게 보조를 해야 한다는 논리는 너무 문제를 좁게 보는 것이다. 농업대책은 국가경제 전체의 진로와 독립적으로 떼어 생각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 그나마 경쟁력이 있는 부문도 세부담 증가로 잘못되지 않을지 걱정된다. 전반적 국가경쟁력이 강화되어야 취약한 농촌부문을 부축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기존 세제의 개편과 세정의 개혁 및 재정운용의 합리화를 모색함이 없이 세정확보를 서두르는 것은 장기적으로 올바른 결정이 아니라는 점이다. 특히 농촌대책의 경우 과연 10년안에 경쟁력이 확보될 수 있는 것인지,혹은 보다 긴 시간이 걸릴는지도 판단해야 한다. 단기적인 성과만 노리는 전시행정을 극력 피해야 한다.
민주사회에서 조세저항을 유발하지 않고 증세를 하려면 국민적 합의를 먼저 이끌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합의를 이끌어내자면 어떻게 농업생산성을 높일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먼저 내놓고 토의를 해야 한다. 농촌발전심의위원회가 이 일을 맡는다고 하나 매년 1조5천억원 투입을 먼저 결정해놓고 자금을 이리저리 배정한다면 경제논리보다는 정치논리에 휘말릴 가능성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염려되는 것은 세금을 늘리고 정부의 소득보장 지출은 늘어나는데 농업은 경쟁력을 갖지 못하는 사태다. 일을 서두르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농민을 진정으로 위하는 길과 농업의 경쟁력을 갖추는 일에 합의한후 세금을 어떻게,얼마나 더 거둘 것인가를 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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