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냉전시대 기능·위상 재정립/나토 정상회담 무얼 논의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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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유럽,「아시아 중시」 미 정책 주목 대응책 모색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16개 동맹국 정상회담은 탈냉전시대 나토의 기능·위상을 재정립하고 2000년까지의 신 나토전략을 수립한다.
2년만에 열리는 이번 정상회담은 ▲구 유고내전을 둘러싼 미국과 유럽국간의 역할분담 ▲탈냉전시대의 안보공백에 대응한 기구 재편 ▲나토의 안보우산을 요청하고 있는 구 공산권과의 관계설정 등을 집중 토의한다.
특히 민족주의가 부활되면서 지역분쟁이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자국이익을 최우선하며 신 고립주의 경향을 보이고 있는 미국이 종전처럼 세계경찰로서의 주도적 역할을 계속 떠맡을지를 가늠할 기회라는 점에서 회담의 무게를 더하고 있다.
1949년 구 소련 등 동유럽 공산진영의 군사적 위협으로부터 서유럽 방위를 위해 탄생된 나토는 최근 바르샤바 조약기구가 해체되고 소련이 붕괴되는 등 냉전시대의 「적」을 잃어버린채 표류해왔다. 유고내전은 미국과 유럽과의 마찰을 심화시키고 신뢰를 위태롭게 해왔다. 미국은 유고내전이 「유럽의 문제」라는 이유로 2차대전이후 처음으로 유럽내 분쟁에 개입을 거부했다.
최근에는 그동안 미국의 대외정책이 유럽에 지나치게 편향돼왔다는 반성과 함께 아시아 중시론을 들고 나와 대서양간 유대관계는 냉기류가 지속돼왔다.
미국은 한걸음 더 나아가 이번 회담에서 미국이 참가하지 않는 나토내 합동기동군(CJTF) 신설을 제안한다. 즉 미국이 개입을 원치 않는 유럽내 분쟁을 유럽동맹국들끼리 자체 군사력으로 해결하라는 것으로 탈유럽정책을 공개적으로 천명한다.
경제회생을 내걸고 당선된 빌 클린턴 행정부는 30여만명이었던 유럽주둔 미군을 95년까지 10만명선으로 감축할 예정이다. 또 연간 2천8백30억달러 규모였던 국방비를 97년까지 2천억달러선으로 줄인다는 복안을 세워놓고 있다.
미국의 영향력 감소에 대응,공동 외교·안보정책을 표방하고 있는 유럽국들은 그러나 미국을 대체할만한 세력으로는 역부족인 상태다.
95년까지 3만5천명 규모로 실전배치될 독불 「유러군단」이 창설되면서 「유럽안보는 유럽의 손으로」라는 거창한 계획이 진행되고 있지만 유고내전에서 보듯 유럽의 군사 공동보조는 아직 구상단계에 머물고 있다.
유럽국들은 회담에서 지상군 파병을 자제하고 있는 미국측에 보스니아에 대한 공습결정과 함께 파병을 요청할 방침이어서 미국의 유고내전 참여여부가 최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식의제는 아니지만 대동유럽권 문제도 나토의 역할에 큰 변화를 몰고올 전망이다. 미국은 나토동맹국과 러시아의 보수화 경향에 불안을 느끼고 있는 구 바르샤바 조약국간 군사적 유대강화를 규정하게 될 「평화를 위한 동반자관계」 구상을 제시한다.
폴란드·헝가리·체코 등 나토가입을 희망하는 동유럽국가들에 나토의 정회원국 자격을 부여하는 대신 러시아를 포함,개별국가들과 군사유대관계를 맺어 범유럽 평화유지기구로 변신한다는 방안이다. 실제로 민족분쟁이 발생하고 있는 지역이 동유럽권에 집중되고 있음을 감안,보다 효율적인 평화유지를 위해선 동유럽권의 참여가 필수적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정치적·군사적으로 고립화 위기에 몰리고 있는 러시아를 자극,새로운 긴장을 조성시킬 수 있다는 반대로 만만치 않다. 또 영국·덴마크·네덜란드 등 동맹국 내부에서도 점점 시끄러워지고 있는 동유럽의 분쟁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는 반응이어서 이번 회담을 까다롭게 만들고 있다.<브뤼셀=고대훈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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