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새벽을여는사람들>6.중부소방서충무로파출소 이준영반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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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모두가 잠든 서울의 새벽을 지키는 불침번.서울 중부소방서 충무로파출소 李俊榮반장(42)은 18년째 火魔와 싸워온 베테랑「불귀신」으로 알려져 있다.특히 화재가 가장 빈번히 발생하는 한겨울의 새벽은 그의 정신과 몸이 그 어느 때보다 명료하게 살아있는 시간이다.
올 1월 들어 발생한 서울 인현동 인쇄공장.신설동 상가 화재등도 새벽에 발생,어김없이 그를 불러냈다.
관할구역이 3개區에 걸쳐있는 중부소방서에 걸려오는 화재신고전화는 하루 2백여통.반이상이 장난전화며 출동이 필요없는 것등을제외한후 관내 5개 파출소중 하나인 충무로파출소 소방대원이 출동하는 일은 하루 평균 3~4회.
출동지시를 접한후 1개조 6명이 15초만에 2대의 소방차안으로 뛰어들어가 5분만에 현장에 도착하는 것을 철칙으로 하는 만큼 그의 행동은 電光石火에 비유된다.
1백개 119전화회선이 가동되는 중부본서와 관내 파출소가 동시에 연결돼 있어 10분이 멀다하고 울려대는 다급한 전화목소리는 이제 그를 수면중에도 모든 소리를 듣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 24시간씩 맞교대하는 그의 몸이 집에 누울 수 있는 비번날에도 그의 귀는 잠들지 못하는 것이다.
그가 소방관이 된 것은 지난 76년 12월.고등학교 졸업후 군복무를 거쳐 구직길에 나선 그에게 마침 소방대원 모집 광고가눈에 띄었고 별 생각없이 이길로 접어들었다는 것.
성동소방서에서 정문보초를 1년반 선후에야 화재진압에 투입된 그는 그동안 청량리.성수.구의 파출소등을 거쳤고 93년 10월충무로파출소에 배치됐다.
처음에는 직업에 대한 갈등도 있었으나 18년이 흐른 지금은 전혀 동요없이「천직」의 소중함을 깨닫고 있다고 전했다.
화재 현장에서 울부짖는 피해자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는 뿌듯함이 그를 불길속으로 여전히 뛰어들게 하는 것이다.그는 그동안 선착대로 2천5백여회의 화재를 진압했다.한때 만삭의 아내를두고 세상을 등질 뻔한 위험도 겪었으나 타오르는 불길을 접하면이를 잡아내야 한다는 일념외엔 아무 생각도 없다고 했다.
6명의 대원을 진두지휘하는 그는 새해들어「더 빨리,더 안전하게」불길을 휘어잡길 소망하고 있다.
팀웍이 생명과도 같아 피붙이 이상으로 결속된 대원들의 무사고가 올해도 여전히 그의 최대 관심사다.
서울시 전체에 지난해 5천6백여건의 화재가 발생했고 이의 진압에 나선 4천여명의 소방대원중 33명의 사상자가 발생(1명 사망),동료들을 안타까움과 슬픔속으로 몰아넣었기 때문.
또 늘상 거론되는 처우개선,장비의 현대화도 관심사.그러나 도로사정이 나날이 복잡해지는 요즘 사이렌이 울려도 길을 터주지 않는다거나 장난신고를 하고 남의 불행을「강건너 불보듯」구경해 화재진압에 방해가 되는 시민들의 의식이 올해부터는 보다 성숙해지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는 또 시민들에게 화재 초기 5분간의「초전박살」이 중요하므로 집안이나 자동차내에 소화기를 꼭 구비해 줄 것을 당부했다.
개인적으로는 식구들(부인과 1남1녀)의 건강을 빌고 지난해 떨어진 소방위 진급시험을 올해는 꼭 통과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高惠蓮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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