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기능·조직재정비 약속/김 대통령 연두회견 해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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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치권 개혁에 큰 비중… 변화 강력히 촉구/재계요구 전폭수용 기업환경 조성 주력
김영삼대통령이 올해의 국정목표를 「국가경쟁력 강화」로 설정했다.
그는 국가의 모든 역량을 경쟁력 강화에 쏟기 위해 금년 한해는 주요정치 행사도 뒤로 물리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번 기자회견의 부제가 「개혁과 세계화로 재도약」으로 붙여졌듯이 어쩔 수 없는 세계화 추세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세계를 상대로 싸워 이길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지 않을 수 없고 그 기반을 마련하자면 개혁이 필요하다는 맥락이다. 김 대통령은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수단으로 제일 먼저 꼽고 있는 것이 변화와 개혁이다.
개혁의 방향은 능률과 생산성을 높이는데 있으며 이를 위해 법·제도를 정비해 나간다는 것이다.
그는 우선 정부의 기능과 조직의 재정비를 약속했다.
『달라진 국제질서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먼저 정부의 기능과 역할이 달라져야 한다』면서 정부의 높은 비용과 낮은 능률을 해소해 나가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언급으로 보아 지금 경제부처를 중심으로 개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기구개편이 전 행정부 차원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높다.
김 대통령 개혁의 두번째 대상은 정치권이다.
그는 생산적인 정치,경쟁력있는 정치를 촉구하면서 과거의 정치행태로는 국가경쟁력을 높일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김 대통령이 바라는 정치는 실사구시,이용후생의 정치로 그는 이를 생활정치로 정의하고 있다.
정치가 교육·교통·환경·치안 등 시민의 고통을 해결해주는 모습으로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대통령은 정치권 스스로에 의한 변화를 촉구하고 있는데 표현은 완곡하지만 정치권이 「스스로」 변하지 않는다면 이를 「강제」할 수도 있다는 강력한 의지가 물씬 배어 있어 주목된다.
그는 내년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등을 의식한 조기 선거과열 분위기를 의식해 이를 억제키 위해 민자당 스스로가 전당대회·지구당 개편대회 등의 정치행사를 삼가고 김종필대표체제도 그대로 끌고 가겠다고 밝히고 있다.
공직자에 대해서는 무사안일과 적당주의에서의 탈피를 촉구하는 동시에 처우개선을 약속하는 등 공직자들을 일으켜 세우느라 부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러나 정부가 검토중인 개선만으로 이들이 따라줄 것인지는 아직 미지수다. 공직자들이 복지부동을 보수문제만으로 파악해서는 곤란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경제부문에 있어 김 대통령은 재계 등 기업현장에서 지적·요구한 것들을 전폭 수용하고 있다.
사회간접자본시설 확충·경제활동에 대한 규제완화·과학기술 개발 등 거의 모든 요청을 받아들이는 것은 물론 폭넓은 지원을 약속하고 있다. 특히 불필요한 규제는 부패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며 개혁차원에서 규제의 철폐를 다짐하고,기업환경 조성을 위해서는 임금을 안정시키고 금리와 땅값을 더 낮추겠다는 등 능동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런 것들이 임금의 현실화를 내건 근로자와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가 문제다. 그는 올해를 노사분규가 없는 한해로 만들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그러나 연초부터 공공요금 인상 등으로 정부가 물가를 부채질하면서 근로자에게만 희생을 강요할 경우 노사화합의 명분은 약해질 수 밖에 없다.
지난해말 쌀시장 개방으로 호된 곤욕을 치른 김 대통령은 농촌문제에 대해서도 아주 적극적으로 대응할 채비를 갖추고 있는데 과연 그의 공언대로 금년 상반기중 우리 농업의 국제경쟁력을 확보하고 농어촌 생활환경 혁신을 위한 현실적이고 근본적인 방안이 나올지는 두고볼 일이다. 교육개혁 부문에서는 복잡한 입시제도의 개선과 국제화에 대비해 조기 영어교육을 제시했다.
김 대통령이 이날 제시한 여러 시책방향은 바람직스럽게 잡았으나 과연 어느정도,얼마나 효율적으로 추진될지는 미지수다.
금년도는 남은 임기중 선거가 없는 유일한 해로 김 대통령이 차분히 일할 수 있는 기회로 인식되는 반면 반대로 정치권은 95년의 단체장선거를 앞두고 벌써부터 달아오르려는 분위기다.
김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적어도 일정기간은 들뜨기 시작한 정치권을 차분히 가라앉히는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김현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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