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시대>38끝.장융 저,대륙의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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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금년 12월 26일을 나는 中國의 한 지식인 여성이 쓴 두툼한 두권짜리 자신의 가족사를 읽으면서 하루를 완전히 보냈다.여기서 12월 26일이라는 날짜가 각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까닭은그 날이 바로 毛澤東의 탄생 1백주년이 되는 기 념일이기 때문이다.중국현대문학을 공부한답시고 이러저러하게 지난 80년대를 보낸 나로서는 중국의 20세기를 단연 모택동이라는 인물의 세기로 이해해 왔었고,그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의 문제를 도외시하고는 이른바「개방」이후 요즘의 중국을 검토한다는 일이 불가능하지 않은가 하고 아직도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작년 이맘때쯤 중국을 방문하였을 때 北京의 天安門 광장 정남쪽에 위치한 모택동 기념관에 들러 투명한 유리상자 가운데 안치된 모의 시신을 감회어린 시선으로 보면서 내가 받은 느낌은 물론 착잡한 것이었다.우리가 그려왔던 중국의 像들을 돌이켜 보노라면,우선 어릴 적에 아무렇게나 쉽사리 부르던 동요가운데「무찌르자 오랑캐」운운하던 구절부터 70년대 李泳禧선생의『전환시대의논리』를 거쳐 80년대『중국의 붉은 별』에 이르러 한획을 그었다가,다시 최근에는『노만 베쑨』과『 뇌봉』이 한편에,그리고 다른 한 편에는『사람아,아 사람아』가 양립하는 형국을 맞이하고 있기 때문이다.모택동과 중국공산당을 중심으로 한 중국의 像의 이러한 긍정과 부정의 분열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으로 나는 이『대륙의 딸 』이라는 책의 겉 페이지를 열었고,거기서 먼저 미모와 이지를 두루 갖춘 3代의 여성의 일생이 담겨진 여러 장의 사진들을 대하면서 곧 바로 이야기에 빨려 들어갔다. 인구 9천만명을 전후한 四川省에서 1949년,곧 중화인민공화국의 출범의 연도 이래 비당원으로서는 최초로 외국유학의 자격을 부여받았다고 하는 1952년생의 한 여성의 기록을 읽어내려가면서 나는 그녀의 문체의 섬세함과 주변사물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을 단박에 느낄수 있었고,그녀가 자신의 가족사를 통해 증언하고자 하는 중국20세기의 현실을 피부로 절감할 수 있었다.
1909년생인 외할머니의 비정상적이기는 하지만 당시로서는 결코낯설지만은 않았을 터인 매매혼 과정과 재혼에 이르는 우여곡절및거기서 태어난 어머니의 학창 시절과 한 공산당 간부와의 만남을거쳐 결혼에 이르는 과정,그리고 거기서 태어난 필자의 성장과정이 일제의 침략과 만주국의 건설,그리고 중일전쟁,국공내전,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의 흥분 ,반우파투쟁,대약진운동,문화혁명 등의 역사적 사실들과 오버랩되면서 보여주는 장면들은 실로 파란만장한일대 파노라마라는 표현을 허용하고도 남음이 있다.이들 3대에 걸친 여성들의 파란만장한 세월 속에서 우리는 중국 현대사의 무게를 어렵 지 않게 읽을 수 있으며,중국이 어떻게 근.현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는가를「전형적」으로 꿰뚫어보게 된다.특히부모의 교양과 작자 자신의 자질이 결합된 관찰력과 체험에 기초한 핍진성은 읽는 이로 하여금 별반 무리없이 그대로 이야기 의내부로 빨려들어가게 만들고 있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미덕으로작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대륙의 딸』을 읽으면서 간과할 수 없는 독법으로 제시되어야 할 것은 스토리를 따라서 등장하는 주인공들을 둘러싼역사적 관계의 여러 그물들이다.낡은 중국의 봉건질서와 거기에 맞서 새로운 세계로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인간군 상,그 와중에서 새로이 겹쳐진 일본의 침략을 통틀어 우리는 반제반봉건이라는딱딱한 용어로 이름짓는 것인데 이러한 역사의 거대한 명분 속에서 다시 우리는 한 개인을 규정짓는 남녀간의 사랑과 인간집단 사이의 의미,그리고 자질구레하지만 결코 무시될 수 없는 일상들이 포개진다.거기에는 국민당적인 것과 중국공산당적인 것의 날카로운 대립이 있으며,그 대립의 안쪽으로 엄청난 집단의 논리와 사사로우면서도 섬세한 개인,지식인적인 것과 대중적인 것,사랑으로 표상되는 인간 본래 의 성질과 이른바 계급성이라는 것이 마주치면서 예각적으로 충돌하는 모습이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작자의 아버지인 장수유의 행동방식은 우리로 하여금 80년대 우리 사회 일각에서도 거침없이 이야기된 적이 있는 당파성이라는이름의 정열 혹은 헌신들,예컨대『강철은 어떻게 단련되는가』의 고르차긴이라는 인물의 행동들을 자연스럽게 떠올리 게 한다.동시에,50년대에 공산주의적 이상들이 환상으로 서서히 변화되는 과정을 겪으면서부터는 이데올로기가 바로 몰이성으로 대체되는 과정을 목도하게 되는 것이다.우리는 그 과정에서 희생과 고뇌가 필연적으로 수반되어 나타나고 있음도 확 인하며,특히 작중의 마지막 장면인「에필로그」에서 작자의 어머니인 더홍이 일제에 대한 국민당의 타협정책에 항거하여 싸우던 끝에 그녀를 체포하게 만든장본인이었던 학교의 국민당 정치감독관이 1933년 중국을 방문해 자신의 호화주택과 자 동차를 찍은 사진을 자랑하는 장면을 대하면서 우리는 역사의 심각한 아이러니마저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에 그치는 것일까.여기에서 우리의 처지를 뒤바꾸어 보는 것도 이런 유의 중국에 관한 기록을 읽는 또하나의 필수적인 독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다시 말해 작자의 아버지인 장수유라는 인물의 헌신과 소외과정을 예컨대 우리 문학의 黃晳暎의『한씨연대기』에서의 한씨의 생애 혹은 김하기가 80년대에 다루었던 비전향 장기수의 운명들과 대비하여 읽어내는 일이 그것이다.아울러 이러한 엇갈림에서 우리는 흔히 일상적으로 듣거나 보아 알고 있는 대륙 중국과 대만 ,그리고 북한과 남한의 갈라짐의 전체 과정을 역사화하는 일이 포함되어 있음은 물론,나아가 이러한 대립축들이 그런 착종된 얽혀 있음의 구도로부터 그것들이 실마리가 풀어지는 과정에서 새로운 만남의 전망이 생겨날것이라는 자명한 사실을 알아차리는 일도 결코 간과되어질 수 없는 일환이 될 것이라는 점도 중요하다.
20세기의 마지막 10년 가운데 또 한해가 간다.그런 의미에서 금세기에 명멸했던 온갖 정치적 실험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운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대륙의 딸』이라는한 증언을 통해 읽어내어야 할 것은 어쩌면 높은 수준의 균형과같은 경지일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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