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이 다시 뛰게 하려면(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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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현 시점에서 새 내각에 주어진 가장 큰 과제는 뭐니뭐니해도 공무원들이 새로운 각오로 뛸 수 있는 여건과 분위기를 마련해주는 일이다. 정부역할의 크나큰 비중에 비추어 볼때 현재처럼 공무원사회가 「복지부동」의 태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한 개혁도,경제의 활성화도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새 내각은 무엇이 공무원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복지부동의 분위기를 만들어냈는가를 면밀히 분석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가 보기에 첫째는 문민정부가 들어선뒤 계속돼온 사정작업에 그 원인이 있다. 사정작업의 논리적 정당성에 반발할 수 있는 공무원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오랜세월에 걸쳐 관행화되고 구조화된 부정과 비리를 어느날 갑자기 수사와 감사에 의해 제거하려드니 모두가 움츠러들 수 밖에 없었다.
부정과 비리에 대한 수사와 감사도 사정의 한 부분인 것은 틀림이 없지만 그것이 전부가 되어서는 사정의 목표가 이룩되기 어렵다. 문제는 제도적 개선에 의한 부정과 비리의 원인제거에 있다할 것인데 수사나 감사는 결과나 나타난 현상에 대한 처벌을 주목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 내각은 앞으로 부정과 비리가 어떤 제도,어떤 사회적 관행에 의해 일어나는가를 파악해 그 근원을 제거하는 본질적인 사정위주로 그 방향을 바꿔야 한다.
사정이 결과나 나타난 현상에 대한 수사나 감사위주가 되다보니 경우에 따라선 의욕적으로 일을 벌였던 사람이 더 처벌에 노출되는 모순도 생겨 공무원들이 더 일을 안하게 된다. 말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의욕에서 오는 실수에 대해서는 관대하다는 것을 정부는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해 입증해줄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는 인사가 공정해야 한다. 공무원사회처럼 인사에 민감한 조직도 없다. 그런데 상층부에서부터 의외성의 인사,낙하산 인사,정치계파적 인사,지역편중의 인사가 두드러지니 공무원들이 소임에 충실하기 보다는 상부의 눈치를 살피고 정치판의 향방을 관찰하는데 더 열중할 수 밖에 없다. 승진길이 막히니 사기도 떨어진다. 이 점에 대해선 정부차원에서의 깊은 반성이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처우개선이다. 공무원도 생활인이다. 사명감만 먹고 살 수는 없다. 공무원들이 의욕을 갖고 일하고 부정과 비리에 빠져들지 않게 하기 위해선 대폭적인 처우개선이 빠른 시일안에 이루어져야 한다. 이 점에 대해선 이회창총리도 취임직후인 지난 18일 『처우개선 없이 일방적으로 부정부패를 하지 말라고 요구할 수 없다』고 말한바 있다.
정부는 먼저 연차적 처우개선 계획을 세워 공무원들에게 알리고 그것을 틀림없이 지켜나가야 한다. 비록 막대한 예산이 드는 일이나 그것이 이 사회의 부정·부패를 없애는 필수적인 과제의 하나라면 일반국민들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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