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에 새바람을 기대한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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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병태 신임 국방장관은 22일 저녁 TV로 방영된 군수뇌와의 상견례에서 많은 국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장관에 취임하면서 예의를 갖춰 덕담을 나누는 이른바 면알회라는 자리가 전례없는 파격으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군 현안을 꺼내어 놓고 수뇌부를 향해 속사포처럼 퍼부어대는 이 장관의 질문과 질책은 5공 청문회를 방불케 했다.
비공개로 점잖게 훈시나 하던 지난 시대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상견례였다. 이 장관은 지금 한창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포탄수입 사기사건과 관련,군수본부장·기무사령관·특검단장을 차례로 「신문」했다. 본부장은 뭘하고 있었느냐,사령관은 언제 알았느냐,단장은 검열을 어떻게 하고 있는 것이냐고 따졌다.
이 장관의 결론은 명료했다. 이렇게 해놓고도 국민에게 군을 이해해달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한집이 평균 연 1백만원에 가까운 방위비를 부담하는 현실에서 장관으로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의혹을 그대로 보고 있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우리는 이 국방의 이같은 현실감각을 높이 사고자 한다. 고식적 형식주의나 군의 특수성을 앞세운 장막행정을 과감히 탈피해온 국민의 시선과 냉엄한 대결상황의 현실을 그대로 인식한 새 바람이 군전체에 불기를 기대한다. 이 장관이 적절히 표현했다. 『앞으로 군은 붕 떠서 신문·잡지나 보지 말고 적을 읽어야 한다』고.
이 장관의 말대로 집집이 1년에 평균 1백만원 가까운 방위비를 부담하면서 우리가 대군을 유지하는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다. 전쟁을 예방하고,전쟁이 불가피한 때는 싸워 이겨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적으로부터 지켜주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래서 국민 모두가 강군을 원하는 것이다. 강한 군대는 국민이 피부로 와닿는 신뢰감을 느낄 때에만 가능하다. 부정과 의혹을 감춘채 보호막을 두르고 있는 한 신뢰감은 생기기 어렵다.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는 군대가 얼마나 허약한 존재인가를 우리는 역사에서 수없이 보아오지 않았는가.
문민정부들어 2기 장관을 맞은 국방부에 우리는 이같은 기대를 걸면서 앞으로의 변신을 지켜보려 한다. 전임장관의 경우는 군의 문민화란 결코 쉽지 않은 정치적 과제와 씨름했지만 신임장관에게는 이에 더해 군의 효율화란 경제적 과제가 기다리고 있다. 합목적적이면서도 합리적인 효율집단으로 탈바꿈해야 하는 시대적 명제와 부닥치고 있다. 합리적 개혁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그런 점에서 신임장관의 부대별 난상토론을 통한 개혁과제 추출 및 장관실 직보지시를 우리는 관심있게 지켜볼 것이다. 내부의 문제의식을 과감히 노출하고 이를 합리적으로 개혁해 나가는 군의 신풍을 기대해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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