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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계 내무부장악” 예고된 결정/뒷얘기 무성한 「12·21개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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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권 국방 「무기사기」 터져 앞당겨 퇴진/서상목­김우석씨 막판 부처 재배정
김영삼대통령은 이회창 신임총리 임명직후 개각대상 각료와 후임자 이름이 지상에 보도되자 비서실 관계자들에게 함구를 엄명,철저한 보안유지 속에서 인선을 마무리했다.
김 대통령은 임명하게 될 본인들에게 직접 통보해주었는데 대부분 20일 밤에 전화를 했고 신병정리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18,19일에 통보하면서 발표때까지 보안을 당부.
○…김 대통령은 입각을 통보하면서도 직책은 일절 밝히지 않은채 「중요한 일」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만 말하고 열심히 일할 것을 당부.
일부 당사자들은 김 대통령이 절대 보안을 요구한데다 실제 사전유출로 취소된 사례도 있은 터라 아내에게조차 비밀로 하거나 아예 잠적하기도 했다.
입각자 대부분은 김 대통령과의 직접 통화가 즉각 이루어졌는데 이는 청와대 관계자가 사전에 대기 언질을 주었기 때문.
이 총리의 천거로 알려진 박윤흔 환경처·황영하 총무처장관에게는 이 총리를 통해 우선 통보가 있었다는 후문.
○…김 대통령이 개각을 구상하면서 처음부터 황인성내각의 경제정책 혼선과 안보·외교팀의 불협화음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경제·통일 두 부총리의 경질이 불가피하다고 결론,후임을 물색.
청와대 주변에선 한완상 통일원장관의 대북 유화책이 북한 핵처리와 관련해 문제가 있었던 것도 교체의 주요한 이유였지만 안기부·외무부 및 청와대 외교안보비서실과의 마찰이 보다 근본적인 요인이 된듯하다고 풀이.
또 김덕 안기부장을 한 장관 후임으로 하고 최병렬의원을 안기부장으로 하는 방안도 검토됐으나 김 부장이 전환기의 안기부를 잘 이끌어온 마당에 이임은 무리라는 판단에 따라 없던 일로 낙착됐다는 후문.
○…「민주계가 내무부를 장악해야 한다」는 요구는 이번 개각의 전제처럼 됐던 일이다.
최 장관은 그러나 절대보안 지시에 따라 통보받은 이후까지도 『문정수·백남치의원이 가는 것 아니냐』고 딴청을 부리기도.
김덕룡 정무1장관의 퇴진으로 서청원의원이 정무1장관이 되는 행운을 얻었다. 김 대통령이 민주당 총재시절 비서실장 출신이면서도 자리운이 없던 그는 지난번 국회 상임위원장에서도 탈락하자 낙심천만이었는데 오히려 「위복」이 된 셈.
○…이인제 노동장관의 경우는 금년초 「무노동 임금」 파동때부터 김 대통령의 눈밖에 났으나 외부에는 이런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다.
이 장관 자신이 유임으로 믿고 있다가 차안에서 라디오를 통해 개각발표를 듣고 알았다는 후문.
송정숙 보사장관도 이날 오전까지는 교체되리라는 것을 까맣게 모르고 오후 2시 신년 업무보고를 받기로 했다가 20여분전 박관용 청와대 비서실장으로부터 통보를 받았다.
권영해 국방장관의 경질은 내년 상반기설도 있었으나 개각시기와 동시에 터져나온 무기사기사건으로 교체가 앞당겨진 셈.
그가 여러 잡음을 냈는데도 내년 상반기께를 교체시기로 잡았던 것은 「이용가치가 없으면 버린다」는 토사구팽 시비를 의식했기 때문.
○…서상목의원은 당초 상공장관으로 입각이 얘기됐으나 김철수장관의 유임결정에 따라 보사장관으로 교통정리.
유사한 케이스가 김우석 건설장관의 경우인데 김 장관은 총무처장관으로 검토됐으나 이 총리가 감사원장으로 재직할 때 사무총장이었던 황영하씨를 천거,재배정이 이뤄졌다는 것. 총무처장관에는 차관을 지낸 손종석 EXPO 사무총장의 기용도 검토됐었다. 또 김 건설장관 임명에 따라 막판까지 오르내린 이형구 산은 총재의 입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총리는 황 총무처장관외에 사람좋기로 소문난 박윤흔 환경처장관을 소개했다는 후문인데 환경처의 업무가 국내 문제보다는 그린라운드를 대비한 국제법통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으로 어렵지 않게 수용됐다는 것.
○…정재석 교통장관의 경제부총리 승진기용은 그의 교통장관 임명때부터 예고된 것. 김 대통령은 정 부총리가 교통장관으로 업무보고차 청와대에 들어올 때는 경제 전반에 대한 그의 구상을 묻기도 하면서 부총리 재목임을 확인했다는 얘기다.
또 그가 현 경제각료 그룹보다 대선배로서 전체적인 팀을 이루는데도 상당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도 작용했다는 설명인데 여러 부총리 후보가 등장했던 것은 연막을 위한 것이었다는 설명.
○…이영덕 통일부총리의 경우는 80년대 적십자사 부총재로서 대북문제에 깊숙이 간여해와 경험이 있는데다 당시 북측 대표들을 능수능란하게 다뤄 유명했던 인물.<김현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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