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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을살리자>11.보리-다수확 홍성보리 종자로만 명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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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쌀 못지 않게 우리에게 중요한 식량자원이던 보리도 우루과이라운드(UR)태풍앞에 風前燈火처럼 흔들리고 있다.
쌀을 포함해 수입제한을 해오던 기초농산물 15개 품목중의 하나였으나 97년부터 전면 시장개방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잖아도 수요감소로 해마다 재배면적이 줄어 겨우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는 보리가 자칫 사라질지도 모르는 위기 앞에 서게 된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처럼 수요가 많지 않은 국내 현실이 국제곡물메이저들의 구미를 자극하지 않아 오히려 외국산 보리의 상륙을 저지하는 방벽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앞설 뿐이다.
70년대 후반 혼.분식제 폐지와 쌀의 자급자족등으로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 보리는 그러나 최근들어 무공해.低콜레스테롤의 건강식품으로 새롭게 인식되면서 수요가 다시 늘어나고 있는 상태.
1940년대까지만 해도 전국에 걸쳐 1백만㏊를 넘었던 재배면적이 92년말현재 6만6천㏊까지로 줄었다.
보리가 건강식품으로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것은 최근 보리의 효능이 하나하나 밝혀지면서 재조명되고 있기 때문.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베타-그루캔을 비롯,빈혈과 고혈압.당뇨병등 성인병 예방및 치료에 효과가 있는 비타민B.판토텐산.철분.
엽산등이 쌀에 비해 최고 14배나 많이 함유돼 있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특히 생화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얼 스타트먼 박사(73.
美국립보건원생화학연구실장)는 지난해 10월 아시아-태평양생화학학술대회에서 보리에 항암작용과 노화방지에 탁월한 효능을 보이는셀레늄이 곡류중 가장 많은 최고 6.3~4.09 %정도나 함유돼 있다고 밝혀 큰 관심을 끌었었다.
셀레늄은 토양과 동.식물 체내에 모두 존재하는 미네럴(무기질)의 일종으로 처음에는 독극물로 여겨졌었다.그러나 57년 독일의 클라우스 슈바르츠 박사에 의해 바나듐.불소등과 함께 인간에게 이로운 미량원소라는 주장이 제기된 이후 30여 년만에 스타트먼 박사에 의해 그 효능이 밝혀진 것이다.
스타트먼 박사는 이 대회에서「셀레늄이 노화와 각종 암을 유발시키는 과산화지질등을 억제시켜 인체의 면역력을 증강시킨다」는 실험결과와「셀레늄 함유량이 낮은 토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함유량이 높은 지역의 주민에 비해 암으로 인한 사망 률이 2배이상 높다」는 역학조사 결과를 토대로 이같은 주장을 폈다.농촌진흥청을 중심으로 한 맥류 연구가들도 이같은 연구결과를 계기로 토종보리를 무공해 건강식품으로 특성화하기 위한 연구에 나서고 있다. 국내에서 토종보리에 대한 연구가 시작된 것은 지난 70년대 후반부터.재배면적 감소로 인한 종자멸종 위기의식과 보리의건강식품화에 대한 필요성에 따른 것이었다.
77년 서울大 河龍雄박사가 日帝때 국내에서 수집해간 각종 종자를 보관중인 일본 오카야마大 농생물연구소에서 토종보리 종자 4백29품종을 구해와 특성 분류작업에 나선게 토종보리 연구의 시작이다.
농진청도 85,86년 2년간 전국 보리 재배농가에서 외형적으로 특징이 달라 보이는 토종보리 2천여점을 수집해 대충 1천여종의 분류 작업을 끝냈다.
토종보리는 보통 키가 1m 안팎으로 추위에 강한 메보리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나 찰보리 등도 일부 포함돼 있다.
대표적인 토종보리는 洪城보리와 鎭安胴보리.靑보리등으로 한국전쟁 이후 멸종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근 농진청 종자은행에 종자가 보존되고 있는 사실이 확인됐다.
충남홍성군홍성면에서 재배돼 오던 洪城보리는 36년 충남 장려품종으로 선정될 만큼 수확성이 뛰어났었다.
키가 다른 토종보리에 비해 월등히 작아 바람에 잘 쓰러지지 않는 데다 추위에 강한 특성을 지녔기 때문.
이삭의 형태가 크고 둥근 전북 鎭安胴보리와 낱알이 청색을 띠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경남남해 靑보리도 추위에 강하고 질병저항성이 우수한데다 수확량도 많아 30~40년대 주요 보리품종으로 각광받았었다.
이밖에 영.호남 지역에는 洪城보리와 유사한 몽당보리.앉은뱅이보리.난장보리등이 재배됐으며 키가 다른 토종보리의 절반정도로 바람에 잘 쓰러지지 않아 수확성이 뛰어났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반해 키는 크지만 추위에 견디는 성질이 우수한 키다리 보리도 서울.용인등지에서 재배되었다.
그러나 이삭이 쭉 늘어져 낱알이 듬성듬성한 늘보리와 쓰임새가많다는 두루보리,봄.겨울철 모두 재배된 양철동보리(兩節보리),까락이 없는 중보리 등은 50년대 이후 모두 사라졌다.
특히 토종보리 중에는 찰성이 좋아 쌀밥 맛이 난다는 창녕 찰보리를 비롯,함안 찰보리.군북 찰보리.흑산 찰보리.제천 찰보리등 찰보리 품종이 있었다.
창녕 찰보리는 8~9년전까지 경북달성군 쌍계마을의 3~4농가에서 유일하게 재배됐다.
당시 찰보리를 재배했던 柳大碩씨(62)는『보통 보리로 담근 술은 미끈미끈하고 맛이 없었으나 찰보리 술은 고소한 맛으로 큰인기를 끌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시리아.이란등 서남아시아지역이 원산지로 알려진 보리 역시 우리나라에 언제 들어왔는지 정확한 시기는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중국을 경유해 약 3천년전부터 도입돼 재배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서기 700년 중엽의 충남부여읍 부소산 백제 군창터에서 탄화된 보리가 출토된 것이나 삼국시대 문헌에 자주 등장하는 부분들이 이같은 추정의 근거가 되고 있다.
「三國史記」에는『여름철인 5월 남쪽 신현에서는 보리재배가 활발하다』고 적고 있고,「百濟本記」는『溫祚王 28년에 보리 피해가 매우 컸다』고 기록돼 있는 점으로 보아 삼국시대에는 보리 재배가 보편화되었고,중요한 식량작물이었음을 쉽게 추측케 한다.
따라서 학계에서는 三韓.扶餘시대 훨씬 이전인 기원전 10세기께 부터 보리가 재배됐을 것으로 보는게 정설로 돼있다.
조선시대「農事直說」(1429)은 보리품종을 봄보리.가을보리로구분하기 시작했으며,봄보리를 春麥.春부로,가을보리를 秋麥.宿麥.秋부.秋秧부등으로 부르는등 모두 6종으로 분류했다.
또 조선총독부가 국내 농업전반을 조사.기록한「韓國農業調査」(1906)는 1905년 한국에서 재배된 보리품종을 육모보리.쌀보리.동보리.중보리.칼보리 등으로 분류했으며 이중 쌀보리와 육모보리를 주로 재배했다고 기록하고 있다.이후 보리 는 해방전까지 勸業模範場(농업진흥청의 전신)의 보리종자 확대보급과 개량사업으로 전국적으로 재배되면서 지역별로 보리품종이 토착화하는등 전성기를 맞았으나 한국전쟁과 개량종의 확대.보급등으로 현재에는거의 멸종된 상태.
현재 호남과 경남.충북 일부지역에서 소규모로 재배되는 보리는생산성이 우수한 외국종과 토종을 교잡해 만든 이리5호.이리6호.수원175호.밀양16호등 모두 개량종이다.
보리는 민간요법제로도 두루 이용돼 왔다.
「本草綱目」은『보릿가루는 위를 고르게 하고 갈증을 그치며 먹은 것을 소화시키고 장을 치료하니 밀보다 좋다』고 적고 있다.
「東醫寶鑑」에도『성질이 따뜻하고 맛은 짜며 독이 없으니 속을고르게 하고 오장을 실하게 해주니 오래 먹으면 건강하게 살이 찌고 윤택해진다』고 기록돼 있는등 오래전부터 약용으로도 쓰여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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