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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그사람>27.72년 시민회관 화재 박준호 소방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1972년 12월2일 토요일 오후8시27분쯤.서울종로구 세종로 시민회관(現 세종문화회관)에서 큰 불이 났다.이날 시민회관에서는 문화방송 개국 11주년을 기념하는 「10대가수 청백전」이 열리고 있었다.당시 국내 톱가수가 모두 모여 초만원을 이룬가운데 공연이 시작됐다.그러나 쇼가 끝난 직후 전기합선으로 화재가 발생,관람객 53명이 사망하고 63명이 부상했으며 지상 10층의 시민회관 본관이 전소됐다.
『당시 서울에는 4개의 소방서밖에 없었습니다.고가사다리차라곤중부서에 한대밖에 없었죠.창문마다 매달려 살려달라는 사람들로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습니다.』 불이 난지 5분여만에 처음 현장에 출동한 당시 중부소방서 장비담당 朴準浩씨(55.現 종로소방서장). 그는 71년 일본에서 도입,국내 처음 선보인 고가사다리차를 조종할 수 있는 유일한 소방관으로 화재현장에 출동,60여명을 구조하는 대활약을 보였다.
『고가사다리차가 몇대 더 있었으면 더 많은 인명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한 그는『당시에 비해 요즘은 많은 장비가 있음에도 도로사정이 좋지 않아 제대로 장비를 화재현장에 투입할 수 없는 현실을 보면서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했다.그는 당시 조기출동해 화재를 진압하지 않았더라면 대연각 화재때보다 더 많은 인명피해가 났을 것이라고 했다.당시 불길은 출동후 1시간20분만에 잡혔다.
70년대초반은 유난히 대형화재가 많았다.건국이후 인명피해 10대화재중 4건이 집중 발생했다.71년12월 서울 대연각호텔(사망 1백63.부상 63명),74년11월 서울 대왕코너(사망 88.부상 35명),74년10월 서울 뉴남산호텔( 사망 19.
부상 63명)화재등이다.
시민회관 화재때는 워낙 목숨이 경각을 다투던 때라 사연도 많았다.2층 창틀에 거꾸로 매달려 있다가 극적으로 구조된 趙修雅양(당시 6세)은 온국민의 손에 땀을 쥐게 했었다.그는 후에「기적의 소녀」로 불리며 회자되기도 했다.이때 맺은 인연으로 소방당국은 한때 趙양을 여성소방관으로 특채하려고도 했다.그러나 그는 서울 Y상고를 나와 일찍 결혼,평범한 가정주부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공연에 출연했던 가수중 문주란씨는 2층에서 떨어져 허리가 다치는 중상을 입었다.그는 3개월간 병원신세를 지다가 휠체어를 타고 중부소방서를 인사차 방문,소방요원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하기도 했다.이밖에도 李南鎔 당시 서울시민회관 장을 비롯,5명의 시민회관 직원과 서울시청 직원 4명이 회의실에서 연말결산업무를 보던중 현장에서 순직했다.
『화재의 40%가 요즘과 같은 월동기에 일어납니다.소방요원들은 월동기가 되면 비상근무로 제대로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죠.하지만 귀중한 생명과 재산을 지킨다는 긍지와 사명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그는 시민회관 화재때 목숨을 건 구조활동으로73년 청룡봉사상을 수상했고 지난 11월에는 녹조근정훈장을 받기도 했다.다른 어떤 일보다 인명을 직접 구하는 소방업무에 투신한 것을 더없는 보람으로 여긴다는 그는 월동기 화재예방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李順男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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