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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을살리자>9.무우-대평무,주산지 물에잠겨 텃밭서 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우리의 무씨가 전세계 1백여 나라로 수출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국내 40여곳의 종묘회사가 토종무를 조합,교배해 만든 4백20여종의 무가 70년대말부터 동남아를 비롯해 美洲.유럽등 세계각국의 식단으로 파고들기 시작하면서 세계 거의 모든 지역에 수출돼 재배되고 있다.
특히 인기를 끌고 있는 품종인 태양.태왕.태백등「태」시리즈와백경 등은 육종기술상 무분야 최고의 걸작이란 평을 듣고 있을 정도. 우리 무가 이같이 세계에 군림하게 된 것은 46년 禹長春박사의 귀국을 계기로 비롯된 채소 육종기술이 본궤도에 오른 덕분이기도 하지만 고유의 맛을 지닌 다양한 토종들이 바탕이 됐기 때문.
이 땅에 무가 들어온 시기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중국 의학서인 李時珍의『本草綱目』에「중국에서 무가 재배된 것은기원전 4백년부터」라고 돼 있는 점 등으로 미뤄 늦어도 삼국시대 형성기인 2천여년전쯤 중국을 통해 들어 왔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겨울에 제맛을 내는「동치미」가 한자어「冬沈」에서,설때 즐겨먹는「나박김치」가 무를 뜻하는 한자어「蘿蔔」(나복)과 김치를 뜻하는 한자어「沈菜」의 합성어「나복딤」에서 각각 유래됐다는 사실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문헌상으로는 고려때 李奎報가 지은『東國李相國集』중「家圃六詠」(여섯 가지 채소의 재배법을 적은 책)에서 「菁」이란 표기로 무에 대한 性狀을 기록한 것이 처음이다.
「서리가 내린 뒤의 맛이 가장 좋아 깎으면 배와 같아 겨울나기를 위해 김치(漬염)로 담가 준비한다」고 해 이미 오래전부터상당한 수준의 품종이 널리 재배돼 김장용으로 이용돼 왔음을 알수 있다.
무는 특히 배추등 다른 채소와는 달리 무청과 뿌리를 모두 이용할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어 먹거리로서 더 할 나위 없는 존재였다.
무는 또 몸체에 전분이나 지방을 분해하는 효소인 디아스타제와에스타레제가 많이 함유돼 있어 체하거나 속이 더부룩할 때 즙을내 마시는 민간요법제로 쓰이기도 했다.
기침이나 황달에도 무씨를 볶아 만든 가루를 물엿 등에 섞어 먹기도 했으며,특히 최근에는 무즙이 니코틴을 없애는 데도 탁월한 효능이 있는 것으로 밝혀져 끽연가들 사이에 새롭게 인식되고있다. 불리는 이름도 가지 가지.
서울.경기지방에서 불리는 무를 비롯,무수.무시.무끼.무유.무이.뭉이.미우등으로 다양할 정도로 전국 곳곳에서 널리 재배돼 왔다. 지금까지 지역별로 명맥이 유지돼 오고 있거나 이내 사라졌지만 특성이 파악되고 있는 토종무는 줄잡아 10여 가지.
그러나 70년대 들어 개량종자의 보급이 확대되면서 생산성에 밀려 진주 대평무.남원무.서울묻을무 등 일부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찾아 볼 수 없게 됐다.
현재 남아 있는 대표적 토종무로 경남진양군대평면 일대에서 재배돼 그 이름이 붙은 대평무는 8월말 파종해 75~80일만에 수확하며 뿌리가 길고 무게도 최고 1㎏ 정도나 돼 토종중에서는생산성이 비교적 높은 품종.
뿌리 아랫 부분이 약간 굵은 원통형에 윗부분 3분의 1쯤이 녹색을 띠는 대평무는 특히 달고 시원한 맛이 나면서도 적당히 단단해 60년대말까지만 해도 서울.부산.대구 등 전국 김장시장에서 上品으로 명성을 날렸었다.
이 때문에 대평면 일대에는 해마다 무 수확철인 11월만 되면전국 각지에서 몰려 든 상인들과 일꾼들로 북적거려 경남 일대 농촌중 가장 잘 사는 동네로 꼽혔을 정도.
인기가 얼마나 있었던지 무씨 한홉과 쌀 한되를 맞바꿀 정도여서 대평농협이 수매해 전국에 판 무씨만 해도 매년 5~6섬이나됐다. 그러나 69년 남강댐 완공후 신풍.하촌.상촌리 등 주산지 대부분이 수몰되면서 생산이 급격히 준데다 상인들이 다른 무를 대평무로 속여 파는 바람에 명성을 잃어 지금은 고작 옛맛을지키는 일부 농가들에 의해 텃밭등에서만 근근이 맥을 잇고 있을정도다. 남원무 역시 60년대까지 대규모로 재배돼 전국에 이름을 떨치던 대표적 토종중 하나.
전북남원군대강면 일대 모래섞인 황토에서 잘 자라 동네에서는「방토무」로 불리기도 하는 남원무의 장점은 뭐니 뭐니해도 가을에움에 묻어 다음해 3~4월까지도 고스란히 보관할 수 있는 뛰어난 저장성.
수분이 적고 단단해 거의 반년이 지나도 바람 하나 들지 않을정도여서 찌개나 깍두기 등을 담갔을 경우 모양새를 그대로 유지해 무를 많이 쓰는 대중음식점이나 잔칫집 등에서 특히 인기가 높았다. 또 일반적으로 무가 갖고 있는 매운 맛이 거의 없는 반면 개량종보다도 오히려 달고 고소해 겨울밤 주전부리로 즐겨 깎아 먹는다고 해서「고구마 무」또는「밤무」로 불리기도 했다.
특히 이파리가 배추처럼 넓적하고 부드러워 쌈용으로도 그만이었다. 무청까지 합친 키가 50~80㎝로 다른 품종보다 20㎝정도나 크고 잎수도 보통 15~20개로 10여개가 더 많아 같은밭에서도 금세 눈에 띈다.
서울 묻을무는 주산지인 서울.경기지방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가장 많이 심어졌던 품종으로 통칭「조선무」로 불렸다.
조선시대 왕실 진상용으로 고양.개성 등지에서 주로 재배되었으며 자연상태에서 뛰어난 것만 골라 심는 방법으로 상당한 수준까지 개량작업이 이루어져 전국 각지로 펴져 나가면서 상당 부분 토종의 원조가 됐다.
무게가 평균 1.7㎏이나 돼 생산성 면에서도 뛰어난데다 장기저장이 가능해 김장용 뿐만 아니라 이듬해까지의 먹거리로 많이 재배됐다.
특히 비교적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 잎수도 보통 16개 이상이어서 무는 무대로 먹고 무청은 시래기나 가축사료용으로 풍부한 양을 제공해 웬만한 산골 비탈밭에서도 흔히 볼 수 있었던품종. 30년대초 우리나라 토종무를 조사해『조선농회보』에「조선무연구」를 발표한 일본인 농학자 高橋光造도 조선의 대표적인 무로 꼽으면서『개성 부근에서 연간 채종되는 무씨만도 1백~2백섬이나 됐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같은 서울 묻을무 역시 70년대부터 개량종에 밀려 지금은 종묘회사들이 연구용으로 심거나 일부 농가가 맛보기용으로 심고 있을 정도다.
또 대부분의 토종들은 개량종에 지위를 내준데다 그나마 지역개발이나 댐.공장 건설등으로 주산지가 없어지면서 이제는 이름조차제대로 들을 수 없는 향수의 무들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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