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유전자은행 추진-소변.타액으로 범인색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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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최근 검찰이 설립키로 한 유전자은행은 무엇을 하는 곳인가.
검찰은 수사 과학화의 일환으로 재범 위험률이 높은 재소자를 대상으로 이들의 유전자를 조사해 보관할 목적으로 이 은행 설립을 추진중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유전자은행이란 주민등록증을 만들 때 지문 날인하는 것처럼 사람마다 다른 유전자 형태를 알아내 신원 확인.범인 색출.친자 감별등에 활용할 수 있도록 컴퓨터에 그 자료를 보관해 은행화하는 것이다.
전국 각지의 하천에 떠오르는 시신만 매년 2천구 이상이며 이중 절반 이상이 신원 미상으로 처리된다.게다가 범죄의 지능화로현장에서 범인의 지문채취가 가능한 경우는 거의 없을 정도며 피살자의 신원확인을 방해할 목적으로 지문을 모조리 없애는 잔혹한경우도 많은 실정이다.
그러나 유전자 감식은 지문을 대신해 이러한 문제들을 대부분 해결해준다.
서울대의대 李正彬교수(법의학)는『범인이 피우고 버린 담배꽁초나 머리카락,피해자의 손톱 끝에 남아 있는 혈흔만으로도 유전자를 통한 신원 파악이 가능하다』고 설명한다.즉 혈액.정액.타액이나 살점등 유전자가 포함된 가검물은 무엇이나 가 능하며 소변역시 그 속에 포함된 요로상피세포들을 검사해 알 수 있다는 것이다.심지어 귀이개를 통해 떨어져 나온 미량의 피부상피세포만으로도 유전자 파악이 가능하다.
이러한 유전자 감식의 정밀성은 올해 노벨화학상 수상 분야인 중합효소연쇄반응법(PCR)에 의해 가능해졌다.즉 PCR를 통해미량의 유전자도 원하는만큼 마음대로 양을 불릴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1백만분의1g의 유전자량만 있어도 충분하 게 된 것이다. 오랜 시일의 경과로 인한 부패나 변성 역시 유전자 감식법엔 별 장애가 되지 않는다.이는 미토콘드리아속에 들어있는 유전물질DNA를 찾아내는 방식의 개발때문으로 미토콘드리아DNA는 핵DNA에 비해 부패에 강하고 한개의 세포안에 수천개 가 들어있어 채취도 쉬우며 뼈나 머리카락 같이 세포가 죽어 각화된 조직에서도 채취할 수 있다.
따라서 수백년이 지난 사람의 뼈나 머리카락에서도 미토콘드리아를 통한 유전자 감식이 가능하다는 것으로 러시아혁명 당시 피살된 황제 니콜라이2세 일가의 유골 역시 이 방법으로 확인됐다.
지금까지는 이러한 유전자 감식이 범죄 현장의 가검물과 용의자간의 유전자 비교를 통해 범인 여부를 확인하는데 그치고 있다.
그러나 유전자은행이 설립되면 가검물만으로도 용의자를 색출할 수 있어 수사 인력.비용.시간등의 획기적인 절감이 가능해진다.
뿐만아니라 유전자은행 가입대상이 재소자에서 전국민으로 확대될수 있다면 우리나라에 많은 특정 유전질환 연구는 물론 미아찾아주기와 무연고 시신의 신원 확인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렇다고 유전자은행이 만능은 아니다.우선 한국인에 맞는검사법 개발이 필요하다.현재 감식에 쓰이고 있는 특정유전자 타입이 몇명중에 한명꼴로 나타나는지 한국인을 대상으로 정확한 발현 빈도를 알아내야 한다.
개인의 사생활 침해가 크게 문제될 소지도 있다.특정 질병과 관련된 유전자가 속속 발견되고 있으므로 다른 이의 유전자를 봄으로써 그 사람의 유전병 여부까지 알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미국의 10여개주에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유전자은행이 설치됐으며 기술발달로 정확도의 향상과 비용절감,절차의 간편성이 더욱 보강됨에 따라 유전자은행 설립은 필수적이란 것이 李교수의 설명이다.
〈洪慧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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