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시대>33.존 롤스 교수,정의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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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1971년 하버드대학 출판부는 현대의 철학적 고전이라 일컬어지게 된 한권의 책을 내놓는다.
이 대학 철학과 존 롤스 교수가 쓴『정의론』(A Theoryof Justice)이 그것이다.
英美 철학계는 이 책이 출간되자 마자「세기적 대작」이라고 평가하면서 최고의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분석철학적 방법론과 게임이론을 이용해 사회계약론을 일반화하고현대적으로 재구성한 그의 정의론은 실제로 사회과학 내지 사회철학의 전 분야에 인식의 준거틀-즉 패러다임을 변화시키는 혁명적파급효과를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정의론』의 중요성은 철학적 관심영역의 밖으로 밀려나 있던 정의의 일반이론을 합리적이고 분석적으로 제시했다는데 있다.
20세기 들어서 인간의 경험에 의해 직접적으로 검증될 수 없는 모든 이론은 무의미한 것으로 간주하는 논리실증주의의 대두에따라 정의의 보편원칙을 발견하려는 노력은 근거없는 개인적 편견을 제시하는 것에 불과한 것으로 무시되고 있었으 나 그가 상황을 뒤집은 것이다.
그의 이론적 계보는 사회계약론에 속한다.
안정된 사회질서를 확립하고 구성원의 권리.복지를 옹호할 수 있는 정의의 원칙은 신으로부터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 인간의 자발적 의사들의 합의에 의해 도출된다는 사상이 바로 사회계약론이다.
그러나 홉스.로크.루소.칸트와 같은 철학자들의 사회계약론은 모든 사회구성원들이 실제로 합의에 이르는 장을 연출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비현실적인 이론으로 무시되고 있었다.롤스의 정의론이 특이한 점은 합리적 선택이론을 이용해 사회계약 에 의해 정의가 도출되는 과정을 실제로 보여주었다는데 있다.
그의 정의론의 방법론적 특징은 그의 정의관 자체에 있다.
그는 정의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직접 답하기 보다는 공정한 절차에 의해 합의된 것이 정의라는 절차적 정의관을 내세운다.
그의 출발점은 유명한「원초적 입장」이다.원초적 입장은 각 개인들이 인간사회에 관한 일반적 사실은 알고 있으나 자신의 재능등 특정한 종류의 개별적 사실을 알지 못하는「무지의 장막」안에있으면서 자신의 이익 극대화를 위해 합리적 선 택을 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합리적 의사결정을 하는 방법은게임이론에서 나오는「최소극대화」전략을 선택하는 길밖에 없다는 것이다. 최소극대화란 사람들이 가능한 여러가지 대안들이 가져올수 있는 최악의 결과들중 가장 덜 나쁜 결과를 보장하는 대안을선택함으로써 그 선택의 결과가 기본적 자유와 최소한의 사회경제적 조건까지 상실하는 모험을 피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런 조건과 절차가 갖춰지면 사회정의의 원리는 전원합의에 의해 도출된다.
사회정의 실현에 있어 가장 중요한 세가지는 자유.평등.사회경제적 복지의 증진이며,이들을 조정하고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것이합의에 의해 도출된 정의의 원리다.
정의의 원리는 두가지로서 항상 앞의 것이 뒤의 것에 우선하는서열을 갖고있다.
제1원리는 모든 사람이 타인의 동등한 자유와 양립하는 범위내에서 최대로 광범한 자유를 부여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제2원리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인정될 수 있는 전제조건에 관한 것이다.
그 조건은 ①불평등한 사회적 지위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평등하게 부여되어야 하고 ②그 불평등은 가장 열악한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최대한의 배려인 경우여야 한다는 두가지다. 그의 제1원리는 공리주의적 정의관의 치명적 약점을 극복하기위한 대안으로서 그의 정의론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그것은 적절한 사회경제적 최저생활이 보장되는한 자유는 자유를위해서만 제한될 뿐 사회전체의 경제적 복지증진을 위해서 제한될수 없으며(자유의 우선성),또한 다수자의 기본적 자유를 확대시키기 위해서도 개인이나 소수자의 기본적 자유를 희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사회정의의 실현에 있어 기본적 자유의 평등한 분배가 갖는 중요성을 강조하고 소수자의 자유권에 대한 강력한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는 것으로 중대한 현대적 의의를 지닌다.
제2원리의 핵심이 되는 차등의 원리는 종래의 자유주의적 형식적 평등의 원리와는 달리 자연적이나 사회적 행운에 의해 얻어진개인의 재능이나 능력을 사회의 공동자산으로 보고 이것을 사회에서 가장 혜택을 적게 받는 자들의 최대이익을 위 해 사용하자는것으로 평등문제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고 있다.
이는 분배적 정의의 문제를 소위 역차별의 방식으로 조정할 것을 요구하며 기회의 형식적 균등으로부터 결과의 실질적 평등으로나아가는 현대적 전환의 이론적 기초가 된다.
〈김형철교수.연세대.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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