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해법」 시각차 있나/한미 조율 둘러싼 외무부 입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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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미 언론들 앞지른 보도로 혼선/「남북대화 전제조건」 계속 유효
미국정부가 북한 핵문제에 보다 유연하게 대응할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한국정부는 여전히 「입장불변」이라는 원칙론만 고수해 한미간의 의견조율에 적신호가 켜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정부는 미국이 팀스피리트훈련 중지와 핵사찰을 교환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라는 미국언론의 보도가 잇따르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원칙론을 고수
그동안 북한이 IAEA(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을 받아들일 경우 내년 팀스피리트훈련 중단을 검토하겠다던 미국의 대북한 핵방침의 중대한 변화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보도대로라면 미국이 또하나의 조건으로 내세웠던 「남북대화의 진전」을 슬그머니 후퇴시켜 북한 핵문제 해결에 한국의 입지가 좁아질뿐더러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 미국이 독자적으로 대북 정책을 펴고 있다는 인상을 줄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홍순영 외무차관과 신기복차관보는 17,18일 잇따라 기자들과의 간담을 자청,『북한이 IAEA의 사찰을 받아들이고 남북대화의 진전을 통한 특사교환이 이뤄져야만 내년도 팀스피리트훈련을 중지할 수 있다는 한미 양국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천명했다. 정부는 미국이 우선순위의 변경을 통보해온 적도 없고,미국이 통보해온 국가안보회의(NSC) 내용에도 이 부분에 전혀 언급이 없다고 설명한다.
현재 미국의 각 부처에서 북한 핵문제가 활발히 논의되고 있지만 결국은 북한이 핵사찰을 받아들이고 남한과의 대화에 응하도록 하는 방안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는 얘기다.
요컨대 미국은 적어도 북한 핵문제에 있어서는 한국과 협조가 잘되고 있고 「북한 핵 해법」을 둘러싸고 한미간에는 이견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미국이 현 시점에서 한국을 배제할 필요가 없다고 외무부 당국자들은 말한다.
한승주 외무장관도 최근 북한이 제의한 일괄타결안과 관련해 『우리는 지금까지 미국과 긴밀한 협의를 해왔고 거의 매일 모든 문제에 대해 협의해왔다』면서 『많은 경우 우리가 이 문제 해결에 주도적 역할을 해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의 이같은 부인에도 불구하고 북한 핵문제와 관련,한미 양국 사이에 견해차가 생겨나고 있는게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 최근 미국에서 북한의 통상사찰을 유도하기 위해 먼저 팀스피리트훈련을 중단해야 한다는 유화론이 강해지고 있다는 보도들이다.
○각론 다소 차이
또 최근 북한이 제안한 일괄타결안에 미국은 「포괄적 협의」라는 말을 써가며 북한과 상의할 수 있다는 뜻을 비치고 있고,팀훈련외에 외교관계 수립을 의미하는 정치·경제적 관계개선을 거론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이들을 북한이 먼저 핵사찰을 수용하고 남북대화에 진전이 있어야 검토할 수 있는 「대안」이며 그것도 핵사찰과 북­미 수교를 맞바꾸는 것이 아니라 핵의혹 해소를 보아가며 단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게다가 일부에서는 미국이 북한 핵문제를 조기 수습키 위해 남북문제를 소홀히 하는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따라서 한미 양국은 북한 핵문제 해결방법에 총론차원에서는 견해차가 없다하더라도 각론에서는 다소 차이가 있는듯하다.
정부가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 이처럼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북한 핵문제 협상에 별다른 진전이 없는데 흡사 해결의 가닥이 잡힌 것처럼 알려지면 뒷감당을 하기가 어렵다는 판단을 했음직하다.
정부는 오는 23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논의될 내용들이 미리 다 보도되면 극적효과를 거둘 수 없다는 점을 고려했을 수도 있다.
김영삼대통령이 최근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 최종에 가까운 협의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 것은 이같은 관측을 뒷받침한다.<박의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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