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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달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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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독일의 과학자 베르너 폰 브라운이 로켓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12세 때 읽은 공상과학소설의 달나라 여행이다. 그의 꿈을 키워준 것은 히틀러의 나치 정부였다. 독일군 포병 장교 도른베르거가 그를 발탁한 것은 액체연료를 이용한 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위해서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폰 브라운은 V-2라는 미사일을 개발했다. 2차 대전 말기 바다를 건너와 밤 하늘에 작렬하던 미사일은 영국인들에게 가공할 신무기였다.

전후 미국과 소련이 독일 로켓 전문가 유치경쟁을 벌인 것도 무기 개발을 위해서다. 전쟁을 통해 미사일과 핵무기의 가공할 위력을 알아챈 양국은 지구의 반대 쪽에 있는 상대방에 치명상을 줄 수 있는 '미사일+핵무기'에 주목했다. 미국으로 망명한 폰 브라운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냉전시대 군비경쟁의 흐름을 선도하며 로켓 기술을 발전시켰다.

폰 브라운의 달나라 꿈이 현실화된 계기 역시 군사적 목적에서 비롯됐다. 핵탄두 미사일이 개발된 상황에서 절박해진 과제는 이런 치명적 무기의 선제공격을 사전에 알아내는 감시장치 개발이었다. 확실한 방법은 우주 공간에서의 감시였다. 탄두 대신 조기경보 위성을 장착한 로켓이 우주로 날아갔다.

본격적인 우주개발 경쟁에 들어간 소련이 1961년 4월 최초의 유인우주선 발사에 성공하자 바로 다음달 미국이 유인우주선 프리덤 7호를 쏘아올렸다. 기다렸다는 듯 케네디 대통령은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인류의 정신을 고양하는 길이 무엇인지를 (프리덤 7호가) 알려주었다"면서 "60년대가 끝나기 전에 인간을 달에 착륙시켰다가 안전하게 귀환시키겠다"고 선언했다.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던 달 착륙의 꿈은 69년 7월 현실화됐다. 아폴로 11호를 쏘아올린 로켓은 폰 브라운이 10여년간 연구해온 대형 로켓 '새턴V'였다. 폰 브라운은 2차 대전의 열기와 이어진 냉전의 이데올로기에 힘입어 달나라 여행의 꿈을 이룬 셈이다.

72년 아폴로 17호의 마지막 여행 이후 달나라는 잊혀져 왔다. 그곳엔 꿈도 신화도, 그리고 실익도 없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30여년 만에 다시 달나라 여행을 들고 나왔다. 화성과 그 너머 우주 여행까지. 꿈은 낡았는데 '새로운 비전'이란 정치적 레토릭은 여전하다.

오병상 런던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