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이 중요한 한일협력(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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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일관계가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 김영삼대통령과 호소카와(세천호희) 일본 총리가 경주 정상회담에서 전에 비해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나눔으로써 두나라 관계발전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심리적 장벽을 뛰어넘는데 성공한 것이다.
이 심리적 장벽이란 물론 기회있을 때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부각되어 두나라 관계를 냉각시키곤 했던 과거사 문제였다. 이 문제에 대해 호소카와 총리는 김 대통령이 「감명받았다」고 말할 정도로 솔직하고도 구체적인 반성과 사과의 뜻을 밝혔다. 이로써 적어도 두나라의 개혁정부는 역사문제를 정치·외교문제로 쟁점화하지 않고 실질관계 개선에 주력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비록 짧은 시간동안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협력방안이 토의되고 마련된 것은 아니지만 경주회담은 지금까지의 어떤 두나라 정상회담보다 미래지향적이고 생산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지난날 말은 전향적이었지만 항상 과거사 논쟁에 얽매여 벗어나지 못했었다. 이 논쟁이 늘 정부차원에서 해결할 문제로 묶여 경제·기술·문화 등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교류에 주력하지 못했다. 정치논리가 경제·문화 등의 논리를 압도함으로써 교류의 길에 장애가 되어왔던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지난날 일본에 대해 많은 문제를 과거 역사문제와 연계하여 풀어나가려던 자세에서 벗어나야 한다. 현재의 추세로 보아 세계 각국은 국제화를 추진하면서 지역화·블록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유럽·미국 등 다른지역에서는 집단적인 경제·안보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으나 아시아지역에서는 그러한 국제적인 협력체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
아시아 지역국가들이 그러한 국제적인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역적으로 긴밀히 협력해 나가야 한다. 그중에서도 일본과 한국의 역할은 이 지역의 발전에 큰 지렛대 역할을 할 것으로 평가돼 왔고,또 그렇게 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한일 두나라가 협력해야 할 필요성은 더욱 절실하다.
우리가 이루어야 할 경제적인 발전도 우리 혼자의 힘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우리의 경제구조는 일본과의 적극적이고도 긴밀한 교류를 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경제논리가 아닌 정치논리로 기술협력을 모색하고 경제협력을 기대해왔다. 그 결과는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바와 같다.
그러나 이제는 한일 모두 그런 자세에서 벗어날 태세를 보이고 있다. 의식과 자세는 되어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러한 의식이 어떻게 실천으로 구체화되느냐 하는 점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과제는 두나라 정상이 뛰어넘는 그러한 역사에 대한 심리적 장벽을 두나라 국민이 행동과 노력으로 허물어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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