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큰 한마디」에 날아간 213억원/「큰손」 장영자씨 희대의 실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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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좀스럽게…” 조 회장 비웃다가 패소/40억 소문 변호사료 2천2백만원
라이프주택이 5공초기에 발생한 거액어음 사기사건의 주인공 장영자씨(48)를 상대로 낸 약정금 반환 청구소송에서 2백13억여원에 대해 승소판결을 받아낸데는 장씨의 옥중편지 한장이 결정적 도움(?)을 준 사실이 밝혀져 법조계의 화제가 되고 있다.
또 라이프측 소송대리인으로 승소판결을 받아낸 정재헌변호사(56)의 수임료 역시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
라이프주택개발 조내벽회장은 82년 장씨로부터 2백억원의 자금을 빌리고 발행해준 어음을 모두 결제했으나 이 과정에서 견질용으로 맡긴 2백50억원 상당의 어음을 장씨가 유통시킨 반면 그 대가로 받아둔 공영토건·일신제강 발행어음은 장씨 구속과 함께 모두 부도가 나 버리자 2백50억원을 반환하라는 소송을 냈었다.
따라서 이 사건에서는 줄곧 「시효완성」이 쟁점이었다. 장씨측은 지급일이 82년 4∼6월이므로 이미 5년의 어음시효가 지났다고 주장했지만 조 회장측은 87년 7월 청주교도소에서 장씨가 보낸 편지를 내보이며 시효가 계속된다고 주장했다.
당시 5년 넘게 옥중생활을 하며 가석방을 위해 애쓰던 장씨는 조 회장이 자신을 상대로 경주지원에 6억원의 어음지불 신청소송을 내자 자신의 이름이 세상에 다시 거론되는 것은 가석방에 불리하다는 판단으로 조 회장에서 소취하를 바라는 편지를 썼던 것.
『조 회장 나 장영자요』로 시작하는 16절지 크기의 편지에서 장씨는 빽빽한 글씨로 『그정도 소액을 지불신청했다니 조 회장과 나와의 인간관계에 비춰볼때 내가 하! 어이없는 씁쓸한 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다』며 조 회장을 꾸짖었다.
장씨는 이어 『어찌 이런 좀스러운 일을 하시게 되었는지』라고 조 회장을 비난한뒤 『경주지원에 제소했다는 「건」 조속히 취소하시고 그 어음을 그대로 소지하시면 내이름이 배서되었다는 데는 만기시효가 없소이다. 어음의 성격여하대로 최선을 다해 드릴 것이오』라고 약속했다.
장씨측은 「만기시효가 없다」는 것은 「그 어음」에만 해당된다고 주장했지만 서울 민사지법은 지난 2일 「내이름이 배서되었다는데는」이라는 문구를 들어 편지 작성일로부터 5년후인 92년 7월까지 시효가 연장된다는 판결을 내렸던 것. 편지 말미에 『장기간의 세월이 흘렀고 세상도 변해가고 있으나 변해서도 변할 수도 없는 것은 인간의 책임과 양심이오』라고 썼던 장씨는 결국 이 편지 한장으로 2백억원이 넘는 거액을 지불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
한편 이 사건 수임료를 두고 승소 가액이 워낙 커 정 변호사가 변화사업계의 관행을 고려할때 6억∼8억원에 최고 40억원의 수입을 올렸을 것이라고 추측성 소문이 한때 법조계 주변에 나돌기도 했다.
그러나 정 변호사는 자신이 조 회장과는 물론 대우그룹 김우중회장,이종찬의원 등과 함께 경기고 52회 동창이라며 『절친한 친구의 어려움을 돕기 위해 변론을 맡아 실제 수임료는 2천2백만원』이라고 밝혔다.<최상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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