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무엇이다른가>끝.연재를 마치며 취재기자 방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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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지난 1일부터 유럽통합조약(마스트리히트조약)이 발효됐습니다.北美자유무역협정(NAFTA)도 멀지않아 뒤를 이을 것입니다.
선진국들이 지역주의와 보호주의 장치를 앞다퉈 만들면서「선진」의발걸음에 박차를 더하고 있습니다.그런가하면 우리 나라와 비슷한수준이었던 개발도상의 경쟁국들이 고속추월선으로 옮겨타고 있습니다. 세기말을 맞아 진행되고 있는 역동적인 변화의 소용돌이 과정에서 유독 韓國만 안타깝게 비틀거리고 있지 않느냐는 지적이 내외에서 제기돼온 터였습니다.지난 9월22일 中央日報 창간기념일을 계기로 시작돼 어제 31회로 끝을 맺은 해외현지 기동취재『先進國,무엇이 다른가』는 앞서가는 사람들을 조명해 우리 현실을 되돌아 보자는 취지의 기획물이었습니다.연재물 제작에 참여했던 취재진이 시리즈에서 못다한 말들을 이 좌담을 통해 털어놔 봅시다. -으레 시리즈物을 마치면 아쉬움이 교차하지만 이번 시리즈만은 왠지 가슴이 답답하고 초조하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군요. 정말 이제 정신차리지 않는다면 국가라고 망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위기감을 취재과정에서 뼈속 깊이 새겼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잘사는 이유,다시말해 선진국이 될수 있었던원동력은 무엇일까요.특히 후발국가들이 선진화로 돌입하는데는 흔히 국가지도자들의 지도력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은데….
-싱가포르의 경우 발전의 원동력을 정부의 강력한 지도력으로 평하는 사람이 많습니다.현지에서 만나본 취재원들도 한결같이 지도력에 후한 점수를 주더군요.그러나 리더십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것을 현지 취재를 통해 확인했습니다.주도는 정부 가 했을지 몰라도 民과 官이 혼연일치돼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서 엿보였습니다.국가 전체가「하나」가 되지 않고서는 선진의 대열에 올라서기 어렵다는,지금의 우리에 시사하는 바가 큰 메시지가 아닌가 합니다. -제도적인 측면에서는 지방자치제가 선진의 밑바탕이더군요.
어디를 가든지 지방마다 경쟁적으로 해외기업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었습니다.日本 지방자치단체들이 우리의 외무부같은 國際部를 두고 독자적으로 외국과 經協을 추진한다거나 英國.獨逸 지방정부들이 앞다퉈 세제및 재정지원등의 혜택을 제공하려드는 것이 좋은 예입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경쟁의식이 몸에 배게되는 것 같습니다.지방자치단체간도 그렇지만 싱가포르에서는 정부 부처간에도 철저한 경쟁을 시킵니다.공무원 1인당 연간 부가가치를 수치로 뽑아발표하는 정도니까요.공무원들이 기업 이상으로 효 율을 따지고 활력에 차있는 것이 다 그런 이유라는 생각이 들더군요.경쟁은 기업에 맡기고 정부는 권위와 규제로 군림만 하려는 풍토는 찾아보기가 어려웠습니다.
-경제,나아가 국익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신축성있게 조정해 나갈 수 있다는 인식도 주목할만합니다.행정.조세.언어.세관.홍보등 국가 전체가 하나의 비전을 향해 주파수를 맞춰놓고 뛰고 있는듯 했습니다.싱가포르는 홍콩의 국제 외환거래시장 과 시간대를맞추기 위해 시차까지 1시간을 당겼을 정도예요.
-선진국들의 경우 눈에 띄는 공통점 중의 하나는 변화에 아주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는 점입니다.한 예로 지금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유럽통합논의는 美國과 日本의 경제력에 대응하기 위한유럽국들의 자구노력의 결과입니다.주변 여건이나 상황의 변화에 끌려다니지 않고 스스로 기민하게 생존대책을 마련해나가는 것이지요.또하나 매사를 기초부터 차근차근 쌓아나가며 모든 것을 축적해 두는 것도 눈여겨볼 만한 점입니다.우리의 경우 60년대말 이후 변화에 잘 대처해오는 듯하다 가 본격적으로 도약을 해야 할 시점에 주춤거리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또하나 중요한 것은 선진국들의 축적된 사회간접자본과 일관된정책,그리고 다음 세대를 위한 대비라고 요약할 수 있었습니다.
흔히 도로.철도.항만.공항.건축물등 선진국의 외형적인 사회간접자본만을 부러워하지만 정작 알맹이는 장래를 내다 보고 대비하는그들의 계획성과 기술력,즉「노하우」지요.완벽한 사회간접시설을 갖추고 있는 싱가포르의 경우 당장 필요한 땅은 매립으로 충당하고 국토의 45%를 다음 세대 몫으로 떼어놓았다는 설명은 큰 충격이었습니다.
-선진국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소프트웨어」들이 몇가지로 정리된 것 같습니다.그러면 이제는 선진국들에 비추어 볼때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과 극복해야 할 과제들을 따져 보기로하지요. -선진화를 이루기 위해 국제화는 필수입니다.이런 관점에서 볼때 「배달민족」으로 표현되는 우리의 전통적인 정서와 관념들이 국제화의 걸림돌로 작용하는 측면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단일이나 동질성도 좋지만 이러한 것들이 배타성을 띠는데서 오는 역기능이 국가 전체적으로는 마이너스가 된다는 것입니다.美國이야 원래 다민족국가라지만 유럽.日本및 기타 선진국들을 돌아볼때 우리처럼 배타성이 두드러지는 곳이 드물어요.우리 고유의 전통이나 특질은 자부심을 갖고 잘 보존해 나가되 편협한 폐쇄성은 과감히 떨쳐버려야 할 것으로 봅니다.
***우리 단점 한눈에 -지나치게 官주도형으로 돼있는 국가 경영방식도 하루 빨리 개선돼야할 점이죠.뭐든지 官에만 의존하다보니 자율성이나 경쟁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지도자 중심」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기에는 이제 우리의 경제규모가 너무 크고 복잡합 니다.선진국들의 경우 가급적이면 국가의 경영을 기업.정부.민간등에 분산,사회 모든 부문의 구성원들을 동참시켜나가고 있는데 반해 우리는 오히려 한곳으로 집중되고 있는 듯한 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이제 혼자만 뛸때는 지나갔습니다.진정한동참과 실천이 필요할 때입니다.
***産-學교류 부러움 -官주도로 인한 대표적인 병폐가 요즘많이 지적되고 있는 집단이기주의 문제입니다.
民의 의사를 제대로 수렴하지 않고 시행하다보니 충돌이 일어나지 않을수 없어요.선진국들의 경우 어떤 정책을 결정하기에 앞서충분한 의견 교환과 절충과 정을 거치도록 제도화돼있습니다.
집단이기주의로 몰아만 붙일 것이 아니라 원천적으로 말썽이 안생기게끔 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그런 의미에서 官주도 풍토의 개선은 선진화를 위한 주요 과제의 하나입니다.
-각 부문간 정보와 지식의 교류가 제대로 안되고 있는 것도 국가적으로 큰 손실입니다.정치를 하다가 학계로 돌아가고,또 기업인이 풍부한 실무경험을 바탕으로 강의를 하는 것등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데 비해 우리는 너무 경직돼 있어요.
-우리에게 부족한 것으로 기록문화의 부재도 들수 있지 않을까요.모든 것을 기록하고 쌓아나가는,한마디로 벽돌 쌓듯 축적해나가는 것이 선진국들의 공통점입니다.프랑스의 신도시인 라데팡스에가면 이 도시의 건설과 관련된 각종 기록.자료. 연구논문등을 담은 책자가 서점에 굉장히 많이 나와있습니다.英國의 신도시 도크랜드나 日本의 多摩 뉴타운등도 마찬가지죠.이같은「온갖」기록들은 다음을 위해 훌륭한 지침이자 교과서가 될 수 있습니다.그러나 우리는 어떻습니까.예를들어「盆唐」 에 관해 책이든 화보든 제대로 된 기록이 뭐하나 있습니까.기록이 없다보니 늘 새로 시작해야 되고 그에 따른 국가적인 비효율과 낭비가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문제점만을 얘기하다 보니 그동안의 우리의 노력을 너무 소홀이 평가하는것 같기도 합니다.지금「신한국의 기초부터 다시 쌓자」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만 따지고 보면 우리의 발전사는 길어봐야 30년 남짓입니다.선진국들의「오늘」은 오랜 시 간을 이루어진 것인만큼 우리도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이제부터라도 새로운 각오로 임하면 될 것입니다.
-세계의 하루 하루가 빨리,그리고 엄청나게 변하고 있느냐는 사실부터 자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냉정히 평가하자면 우리는 사실 「우물안 개구리」와 다름없습니다.
-맞습니다.이제까지 우리를 두고 중진국,또는 후발선진국인 것처럼 얘기합니다만 실제는 임금차액을 기초로 물건을 생산.판매하는 데 성공했을 뿐 진정한 의미의 선진화는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韓國기업들이 일정 수준까지는 올랐 지만 더 이상의 비약을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은 국제화가 제대로 안돼있는데 큰 원인이 있는 것이지요.
***국제화 서둘러야 -국제화의 또다른 의미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함께 「더불어」 살겠다는 마음가짐이기도 합니다.이제 임금이 싸니까 공장을 세우고 우리 잇속만 차리겠다는 근시안적인사고방식으로는 경쟁력은 고사하고 존립이 어렵습니다.日本의 경우진출하 고자 하는 나라의 종교까지 감안,당장에는 이득이 안나더라도 투자를 해나가고 있습니다.반면 우리는 당장의 실적,눈앞의이익에만 급급해 장기적으로 대세를 그르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지않습니까.
-규제 일변도의 여러가지 법령이나 관행들도 과감히 정비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선진 각국들이 다투어 외국기업이나 해외자본들을 유치하려고 뛰는 데 반해 우리는 너무 낙후돼있어요.단적인 예로 62년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투자된 해외자 본의 누계가1백7억달러 정도인 것에 비해 올 한해에만 중국에 투자된 외국자본이 1천억달러나 됩니다.규제는 많고 요소비용은 높으니 어느외국기업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려 하겠습니까.
-제도.시설등에 관해 얘기가 오간것 같은데 취재과정에서 봤던것중 조금「부드러운 것」은 없나요.
-진부한 얘기같지만 선진국 국민들의 검소한 생활상도 깊은 인상을 주는 것이었습니다.정말 우리처럼 흥청대는 모습은 찾아보기어려웠습니다.
-기업은 물론 각나라 공무원들이 세일즈맨 이상으로 적극성을 보이며 협조를 해주는 것에 놀랐습니다.끝나고 난 뒤에도 불편하거나 부족한 점은 없었는지 駐韓대사관을 통해 확인까지 하는데는혀를 내두를 정도였습니다.
[정리=金容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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