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 문제 얼마나 양보하나 … 군 속앓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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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정상회담에 영향을 주는 어떤 얘기도 할 수 없다는 게 군 입장이다."

국방부 고위 관계자들이 13일 한결같이 하는 얘기다. 정상회담이 남북 대치 상태 속에 있는 군 당국에 다각적으로 자제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쪽에서 보면 북한의 도발 또는 우발적인 충돌에 대비해 실시하는 각종 군사훈련과 전력 증강 등이 모두 북한을 자극할 수 있는 요인들이다.

더구나 정상회담 기간(28~30일)이 한.미 연합 차원의 군사훈련인 을지포커스렌즈(UFL)연습(20~31일)과 겹친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실질적인 해상경계선이 돼온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폐지하고 새 경계선을 설정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군 당국자는 "정상회담을 위해 군사적인 문제를 어디까지 양보해야 할지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지난 주말 정상회담에 대비해 청와대에 UFL 축소 방안을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 관계자는 "내부 회의 결과 UFL의 전체적인 구조만 유지하고 정상회담에 부담을 주는 부분을 9~10월로 연기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합동참모본부 등 군 당국의 속내는 답답하다. 합참은 지난해까지 UFL과 별도로 실시했던 화랑훈련을 올해부터 UFL과 연계해 같은 기간에 실시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이번 정상회담 때문에 또다시 따로 하는 것으로 원상복귀해야 할 상황이다.

화랑훈련에 포함된 야외기동훈련은 3개 군단, 10만 명 이상이 참가하기로 돼 있다. 당초 화랑훈련을 UFL 기간에 병행해 실시하기로 한 것은 지자체의 민원을 줄이고 2012년 예정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대비하려 했던 것이다. 이런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 게 불가피하다.

NLL 문제도 복잡하다. 군 당국은 정부가 지난해 5월 25일 남북 철도 시험운행과 관련해 NLL을 협상 의제로 올리려고 했던 분위기를 기억하고 있다. 북한의 주장대로 NLL을 폐지하고 북한이 선포한 해상경계선으로 대체하면 서해에서 북한 해군 위협에 대처하기가 더 어려워진다고 한다. 또 서해 어민들이 삶의 터전인 어장을 잃게 된다.

군의 이런 반발을 의식한 듯 남북회담에 관여하는 정부 고위 당국자는 이날 "NLL 문제가 정상회담의 구체적 의제가 되리라고 보지 않는다"며 사태 진화에 나섰다.

김민석 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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