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무는 대형참사 긴급진단(우리사회 나사 풀렸다: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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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손발 안맞는 해양행정/업무 10여곳 흩어져 입체성 부족/사고날때만 「반짝대책」… 예방소홀
열차 전복·항공기 추락에 이은 여객선 침몰사고 등 최근 해양오염 사고는 더 이상 기상이변이나 사람의 부주의로 원인을 돌릴 수만은 없게 됐다.
한두번도 아닌 대형사고가 육·해·공에서 입체적으로 터지는 것은 우리사회의 구조 전반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경제규모는 커지고 있는데 제도나 의식수준은 제자리걸음이다. 마치 몸은 커질대로 커졌는데 옷은 예전에 입던 옷 그대로인 꼴이다. 움직일수록 이곳저곳에서 실밥이 터지듯 사고가 다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사회구조적 문제
서해페리호 침몰사고도 마찬가지다. 외형적으로는 기상 불순과 인재로 인한 돌출사고처럼 보인다. 그러나 저변을 뜯어보면 구조적인 문제로부터 불거져나온 사고의 전형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제도·의식·투자의 3박자가 모두 뒤떨어져 있으나 다음에는 어디에서 어떤 사고가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우선 행정시스팀이 문제다. 해양행정업무는 5·16때 해무청이 해체된 후 내무부·상공부 등 각 부서로 갈기갈기 찢겨졌다. 지난 76년 해운항만청이 발족되긴 했으나 해양행정을 모두 관장하지는 못하고 있다.
인허가·방제·구조·개발 등 각종 해양업무가 무려 10여개 부처로 복잡하게 분산돼 있다.
예컨대 같은 어선에 대해서도 어업허가는 수산청이,선원관리는 항만청이,입·출항관리는 해양경찰이 각각 맡고 있다.
서해페리호 침몰사고때도 구조활동에는 항만청이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항만청은 형식적으로 사고 대책본부를 운영하고 있지만 현지상황마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지난달 광양항에서 터진 기름유출 사고때도 문제가 됐듯이 방제작업도 관할부서가 여럿이다. 기름제거 작업만 보더라도 기름유출량이 2백ℓ미만일 경우 ▲지방의 소형항구는 각 시·도 ▲어항은 수산청 ▲대형무역항은 항만청이 관장하고 2백ℓ 이상이면 해양경찰대가 맡고 있다. 신속하고 효율적인 방제활동이 제도적으로 어렵게 돼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주무부서인 항만청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종합적인 해양정책을 펴나가지 못하고 있다.
동원산업의 김재철회장은 『해양행정이 너무 분산돼 있어 사고가 나면 책임소재나 따지며 넘어갈 뿐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곳이 없다』며 『바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한곳에서 관장할 수 있도록 기능과 권한을 몰아줘야 한다』고 말했다.
○기능·권한 통합을
의식수준도 문제다. 행정체계가 마비하더라도 있는 규칙만 잘 지키면 사고를 상당폭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항만청이나,경찰이나 심지어는 해운사까지도 승객이 얼마나 탔는지 모르고 있다. 승객명부를 작성하는 등 꼭 지켜야할 규칙마저 과감히 무시하는 풍조가 만연돼 있다.
해운사는 낙도항로보조금과 돈벌이에 신경을 썼지 승객의 안전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 또 항만청은 감독을 소홀히 했다. 사고로 인한 피해규모보다 안전대책에 들어가는 비용이 싸게 먹힐텐데도 설마하는 마음으로 모두들 무모한 일들을 관행처럼 되풀이해온 셈이다.
이 마당에 사고의 원인과 책임소재를 따지는 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서울대 오연천교수(행정학)는 『사고수습책으로 꼭 책임자문책과 규제강화가 뒤따르곤 하는데 이에 앞서 안전에 대한 책임의식과 윤리의식이 보편화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뒤떨어져 있는 것은 투자도 마찬가지다. 87∼92년 우리나라가 매년 항만시설에 투자한 금액은 GNP의 0.15%에 불과했다. 일본의 0.34%,대만의 0.5%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그결과 지난해말 배로 드나든 화물량은 모두 4억5천4백76만2천t인데 비해 항만의 하역능력은 2억5천7백66만6천t에 불과했다. 처리용량의 1.8배에 달하는 화물이 물렸으니 적체는 심각한 수준이다.
○해양오염만 가중
배가 짐을 풀기 위해 바다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비용낭비는 물론 충돌사고와 기름유츌로 인한 오염가능성은 커질 수 밖에 없다.
게다가 해상교통관제시스팀(VTS)도 태부족이다. 국제무역항이라고 하는 부산·인천도 일부에만 레이다시설이 있을 뿐 중앙관제소에서 총체적으로 배의 왕래를 통제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설상가상으로 해운화물은 오염피해가 큰 물질이 대부분이다. 지난해말 현재 연안 화물의 41.6%가 유류였고,14.3%가 시멘트였다. 사고위험은 높은데 화물의 절반이상이 강력한 오염물질이니 사고가 터졌다 하면 대형 오염피해가 뒤따르게 되는 것이다.
항만청의 한 관계자는 『사고가 날때마다 들어가는 비용을 한데 모아 VTS에 투자했더라면 사고규모를 현재의 25%정도로 낮출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남윤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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