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무장 대치… 긴장의 의회/충돌가능성 높아진 러 사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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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낮엔 조용… 밤되자 지지자 몰려/과격파선 “딴 장소로 옮겨 투쟁”
23일밤 발생한 합동참모본부 건물과 국방정보국 건물을 둘러싼 충격전 이후 양측의 충돌 가능성이 점점 높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 최고회의의 분위기는 긴장이 팽팽하게 느껴지고 있다.
24일 오후 2시 옐친측의 의회경비세력에 대한 무장헤제 명령 소식이 전해졌다. 그러나 의회 주변은 크게 동요하는 기색이 아니다. 예상하고 있었던 탓일 것이다. 의회건물 밖에 위치한 지지세력들은 대부분 나이많은 장년층인데 비해 의회건물안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젊은 청년층이다.
이들 가운데는 기관단총 등 무기를 들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맨손인 사람들도 있어 낮에는 무기를 다른 곳에 보관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의회건물 주변의 분위기는 시간에 따라 무척 달러진다. 이날만해도 아침부터 오후2시쯤까지는 소강상태에 빠진 듯 여기저기 수십명씩 모여있는 지지세력들이 바리케이드나 불을 지펴놓은 장소를 둘러싸고 토론을 벌이고 있을뿐 특별한 움직임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저녁이 되면서 의회주변의 열기는 점점 달아 올랐다.
오후 1시쯤까지만 해도 5백∼6백명에 불과했던 지지세력의 수가 8시를 넘으면서 4천∼5천명선으로 불어났다.
오후 9시쯤 오늘 밤 엘친측의 기습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우려 섞인 전망들이 나오기도 했다.
의회경비대의 책임자중 한명인 비탈리 칼리닌은 『러시아 국방장관 코베츠장군이 25일 오전 5시까지 무장을 해제하고 의회를 비우라는 최후통첩을 해왔다』고 밝혔고,의회측이 임명한 보안장관 바라니코프는 『의회를 경비할 7천명의 요원을 이미 조직했다』고 말했었다.
이러한 가운데 옐친과 의회간의 대결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이는 지역의 반응들이 나오고 있다.
세르게이 스탄케비치 옐친 대통령 정치고문은 『지방의회는 약 50대 50의 판세를 보이고 있다』고 언론에 밝혔다.
의회를 지지한다는,노보시비리스크 등 시베리아협정에 조인한 몇개 지역은 옐친에게 의회와의 동시선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시베리아 지역은 세금납부를 거부하고 석유·천연가스 등의 수출을 중단하겠다고 위협했다.
회의엔 『만약 의회가 강제로 이곳 크라스노 프레스넨스카야에서 해산된다면 노보시비리스크로 의회를 옮겨 저항하자』는 노보시비리스크 지역의 제안이 알려졌고 몇몇 과격한 의원들은 『의회를 다른 지역으로 옮겨 그곳에서 단식투쟁을 벌이자』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저녁이 되면서 의회 외곽을 장악하고 있는 러시아 정부 내무군의 수도 증가하고 방탄조끼를 입은 무장 군인같은 경찰의 모습도 눈에 띈다.
의회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인 크라스노 프레스넨스카야 역에서 오몬(내무부 산하 특수경찰부대)과 의회 지지시민이 충돌했다는 보도가 인테르팍스통신을 통해 전달됐다.
사흘째 이곳에서 철야하며 의회를 경비하고 있다는 비탈리군은 『우리는 어떠한 상황이라도 대처할 준비가 되어있다. 끝까지 남아 헌법과 질서를 회복시킬 것』이라고 말한다.
비탈리군은 『무엇을 위해 누구를 누구로부터 지키기 위해 이곳에 있는가』라는 질문에 『나뿐 아니라 여기에 같이 있는 우리 친구들은 모두 91년 8월에 의회를 사수했던 경험이 있다. 자신의 정치일정을 강행하기 위해 헌법과 의회를 정지시킨 행동이 제압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는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라고 대답한다.
어둠이 깔린 이후부터 의회 건물밖에 에워싼 지지군중들을 향해 인민대의원들은 계속 『민주주의와 헌법을 수호하기 위해 친구·가족·동료와 함께 의회를 수용하자』고 촉구했다.
최근 러시아 지식층 사이에 강력한 인기를 끌고 있는 그리고리 야블린스키,헌법재판소장 발레리 조르킨 등도 현 위기를 극복하고 러시아의 단합을 이룩하는 것은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를 동시에 실시하는 길 밖에 없다며 옐친측에 협상안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옐친측의 입장만을 일방적으로 보도하던 러시아 텔레비전 등도 이런 중재안에 대한 보도량을 늘리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 옐친이나 의회는 더 이상 타협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91년 8월 이후 러시아에서 보인 헌정위기,의회와 대통령간의 말도 안되는 싸움이 마지막 순간의 타협으로 마무리된 경우도 한두번이 아니다.
옐친 대통령은 「러시아의 민주주의와 국가의 위기를 구한다」는 명분으로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총선을 명령했고,의회밖엔 「옐친의 행동으로부터 민주주의를 구하겠다」는 또 다른 세력이 역시 민주주의 수호를 외치며 저항하고 있다.<김석환특파원 러 의회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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