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 휴업소동의 교훈(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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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대한약사회는 집단휴업결의 하루만에 다시 약국의 문을 열기로 했다. 국민의 한결같은 비난여론과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의 강경방침에 밀려 극단적인 행동을 포기한 것이다.
약사회가 한의사회와 절충안에 합의해놓고 이를 일방적으로 파기한 것부터가 무리였다. 그것도 회원 전체의 의견이 아니라 일부 젊은 강경파들의 난폭한 압력에 못이겨 취해진 조처라는 점에서 당초부터 약사회 자체의 협상상대로서의 신뢰성을 훼손하는 처사였다. 또 걸핏하면 집단휴업을 단행하고 나선 것도 국민의 분노와 지탄을 자초했다.
약국들이 휴업에 들어가면서 문밖에 내건 약사회 명의의 해명은 특히 설득력이 없었다. 한약조제권은 확보하지 못하면 더 이상 약국기능 수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문을 닫는다니,그렇다면 지금까지 양약만 취급해온 절대다수의 약국들은 국민건강 수호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인가. 또 그렇게도 국민건강을 알뜰히 걱정하는 약사들이 걸핏하면 문을 닫는 바람에 국민들이 응급약을 찾아 길거리를 헤메도록 한 사태는 어떻게 변명할 것인가. 더군다나 문을 연 약국조차 폭력으로 영업방해까지 했다니 이만저만한 모순당착이 아닐 수 없다.
비록 약사회가 휴업 하루만에 여론 앞에 굴복했다고는 하나 수시로 국민에게 불편을 주고 국민의 건강권을 유린한 책임은 물어야 한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횡포가 없도록 법적·제도적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약사들의 직업적 책임과 전문인으로서의 사명을 명확히 규정하는 내용을 약사법의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
약사들은 뼈저린 자성이 있어야 한다. 물론 약사들도 직업적인 만큼 그들의 이익을 옹호하고 의사를 대변하는 조직은 필요하다. 또 그 활동도 보장돼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들의 이익이 국민전체의 이익과 상충될 때는 국민의 이익쪽을 선택해야 한다는 집단이기주의의 한계를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절대다수 국민의 이익을 무시하고 뛰어넘을 가치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길 바란다. 민주주의란 바로 그 원칙을 추구하는 제도지 제멋대로 내몫만 챙기면 된다는 방임이나 방종의 무제한 허용은 아닌 것이다. 이런 원칙은 쓰레기처리장이나 핵폐기물 처리장·장애자 복지시설 같은 혐오시설의 입지선정에도 적용됨은 물론이다.
이 기회에 국민들의 약에 대한 습관도 개선돼야 한다. 몸에 이상이 있으면 의료기관의 진단을 받기 전에 우선 약국부터 찾는 습관은 잘못된 것이다. 약국은 진단의 기능이 아니라 끝난 병증에 대해 투약하는 기능만 가질 뿐이다. 이런 투약습관 때문에 약의 오·남용현상이 심화되고 약국의존도가 선진국에 비해 월등히 높은 것이다. 궁극적으로 의약분업이 조속히 실시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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