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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분 저버린 정동호의원/오병상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어렵게 열린 국회 본회의장을 보고 있노라면 유독 눈에 띄는 빈 자리가 있다. 지난봄 재산공개 파문이후 슬그머니 자취를 감춘 정동호의원의 자리다.
당시 정 의원과 함께 문제가 되었던 박준규·김재순씨 등이 자리에는 새로 선출된 의원들이 활기찬 표정으로 앉아 있다. 물러난 의원들이라고 할말이 없을 리 없다. 그러나 속으로 피를 토했을지언정 박준규 전 의장 등은 자신의 거취에 대해서만큼은 비교적 간명하게 처신했다.
정 의원은 지난봄 재산파문에 따른 민자당의 징계결정에 격렬히 저항했다. 더욱 그의 부인은 민자당 당기위에 나타나 남편 대신 거칠게 항의해 세간의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정 의원은 현재 대만 정치대학의 언어연수원에서 중국어를 공부하면서 나름대로 보람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또 무릎관절도 치료중이라고 가족이 전했다.
그런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정 의원은 현역의원이라는 점에서 재산공개 파문으로 물러나 외유중이거나 국내에 머물고 있는 다른 이들과 다르다. 국회의원은 사인 아닌 공인이다. 정 의원이 지금 있어야 할 자리는 정기국회가 개회중인 국회의사당이어야 마땅하다.
자신을 뽑아준 지역민을 대변하면서 국정에 참여하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는 국회의원의 본분이다. 그래서 국회의원 윤리실천규범은 「국회의원은 정당한 이유없이 장기간의 해외활동이나 체류를 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국회의원은 공식해외출장 등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국회의 각종 회의에 성실히 출석하여야 한다는 조항도 있다. 그러나 국회 윤리위가 정 의원 문제로 회의를 소집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정 의원은 의원직 사퇴를 거부한 이류를 『선출된 임기제 의원이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나도 의원직을 내놓으면 편하다. 그러나 지역구민이 뽑아준 의원직이기에 마음대로 내놓을 수도 없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국회가 열렸는데도 돌아오지 않는 그의 행동은 자신의 불사퇴 변명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정 의원은 재산공개 파동이 한창이던 지난 4월1일 기자회견에서 『재물을 잃는것은 조금 잃는 것이고 명예를 잃는 것은 많이 잃는 것이고 용기를 잃는 것은 전부를 잃는 것이다』고 괴테의 금언을 인용해 심경을 표명했다. 정 의원은 의사당에 돌아오든 달리 거취를 밝히든 더 추해지기전에 용기를 보일 때이고 국회윤리위도 적절한 조처를 취해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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