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대접 받는 러시아연구기관-구소붕괴후 과학자들 반실업상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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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기업은 물론 정부마저 직접적인 이윤창출에 기여하지 않는 이들연구소에 돈을 대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이에 따라 러시아의「상아탑」은 빠른 속도로 무너져 가고 있다.
실제로 모든 연구기관의 과학자.조사연구자.연구보조원들은 대부분 半실업상태이거나 곧 실업자가 될 운명에 놓여 있다.
지표면연구소 소장 니키타 보그다노프는『오늘날 같은 시기에 살아남기 위해선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지원할 그럴듯한 이유가 있어야만 한다.그러나 우리 연구소가 하는 일이란 돈벌이와는 전혀관련이 없다』면서 직원들이 최근 과거의 3분의 1수준으로 줄었다고 밝혔다.
모스크바 한복판에 호화로운 건물을 차지하고 있는 동양학 연구소는 건물 일부를 日本음식점으로 빌려줬다.물론 불법이다.그러나달리 뾰족한 수가 없기에 누구 뭐라는 사람도 없다.이 고급음식점은 일본인 사업가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데 점 심 한끼값이 연구소 연구원 4개월치 임금에 달한다.
이들 연구소 직원의 임금은 현재 모스크바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 돼 버렸다.「계측.표준화.검사연구소」의 경우 직원들 평균 임금은 약 9천5백루블.8천원이 채 안되는 돈이다.
이 때문에 연구소 직원들은 예외없이 한가지 이상의 부업을 가지고 있다.1주일중 2~3일은 연구소에서 일하고 다른 날은 거리에 나가 노점상을 하거나 건설현장에서 막노동을 해야만 간신히가족들을 먹여 살릴 수 있는 것이다.
연구소 수입보다는 부업쪽이 훨씬 수입이 좋은 형편이다.1만5천루블을 받는 한 컴퓨터연구소의 과학자가 지난 7월 한달동안 부유한 러시아人 사업가의 집을 짓는 공사현장에서 일을 하고 받은 돈은 약 25만루블에 달했다.그는 그 전에는 빵집에서 빵굽는 일을 하기도 했다.
이 과학자는 그러나『물질적으론 막노동이 훨씬 낫지만 정신적으로는 말할수도 없이 괴롭다』면서『이런 상황이 하루빨리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말했다.
이런 형편에서 과거처럼 연구활동이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다.연구를 계속할 자금은 바닥난지 오래고 연구자들 수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기업체에서 활용할 수 있는 분야에서 일하던 연구자들은 거의가이미 직업을 바꿨다.「계측.표준화.검사연구소」는 3년전까지만 해도 약 5백여명을 거느린 큰 연구소였으나 지금은 1백20명만남아 있다.
일부 서방국이나 자선단체들은 舊소련의 높은 과학기술수준이 몰락하는 것을 막기 위한 노력을 펴기도 한다.예컨대 증권으로 큰돈을 번 美國의 조지 소로스 같은 사람은 얼마전 동유럽과 舊소련 지역의 기초과학기술 연구기관들을 돕기위해 1 억달러라는 큰돈을 내놓기도 했다.그러나 이들 지원은 시장경제로의 전환이라는대변혁의 물결속에 휘말려 허우적거리는 연구소들을 살리기엔 턱없이 부족한 편이다.
〈康英鎭기자〉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 시민들중 약 95만명은 수백개에 달하는 각종 연구소에 재직하고 있다.10명중 1명이 넘는 비율이다.찬란했던 舊蘇聯의 과학기술수준만이 아니라 모스크바 시민들의 안락했던 삶의 흔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그러 나 舊소련 붕괴후 시장경제로의 이행이 진행중인 지금 이들 연구소에 근무하는 사람들처럼「가혹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어느분야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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