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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장 9명/영욕의 세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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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김병로·조진만씨 때는 대통령도 눈치봐/정권 외풍 못막아 “사법부”라 비난받아/퇴임하며 “회한과 오욕의 나날” 표현도
대법원장은 대법관 임명제청권 및 법관의 승진·전보·재임용 등 인사권과 사법행정권 행사는 물론 헌법재판관 9명중 3명에 대해도 사실상의 임명권을 행사하는 명실상부한 사법부 수장이다.
이같은 권한 집중탓에 역대 정권은 「입맛에 맞는」 대법원장을 임명하기 위해 노력해왔으며 이 결과 정치적 역학관계에 따라 대법원장이 임명되는 역사를 보여왔다.
대법원장은 대통령의 지명으로 국회동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며 임기는 6년으로 중임이 불가능하고 정년은 70세.
가인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으로부터 11대 김덕주 대법원장까지 조진만 대법원장이 3,4대를,민복기 대법원장이 5,6대를 역임해 모두 9명의 대법원장이 배출됐으며 이중 9대 김용철 대법원장과 11대 김 대법원장이 임기도중 사퇴하는 비운을 맞았다.
또한 정치적 격변이 극심했던 우리나라의 해방이후사는 어김없이 사법부에도 찾아들어 정권이 교체될때마다 사법부도 영욕을 함께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사법부가 명실상부한 사법부 독립을 구가했던 시기로는 이승만대통령이 요구한 반민특위 구속자 석방을 끝까지 거부해 이 대통령으로 하여금 반민특위활동 중지를 요구하는 담화까지 발표하게한 가인시절과 4·19이후 재야출신으로 대법원장에 취임해 박정희대통령 집권후에도 외풍을 적절히 견제했던 조진만 3,4대 대법원장 시절.
5대 민복기 대법원장 시절은 71년 국가배상법 위헌판결을 계기로 박정희정권이 사법탄압을 개시해 법관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로 시작된 「사법파동」,유신헌법에 따른 「재임용파동」 등으로 사법부가 아닌 사법부로의 예속화를 가속화시킨 시절로 기록되고 있다.
7대 이영섭 대법원장은 10.26을 전후한 25개월의 짧은 재임기간중 박정희·최규하·전두환씨 등으로 국가원수가 바뀌는 격변기를 겪은 끝에 재임명에서 탈락하면서 재임기간을 『회환과 오욕의 나날』로 표현한 퇴임사를 남기기도 했다.
유태흥 8대 대법원장은 임기를 마치는데는 성공했지만 국가안보와 법관의 국가관을 지나치게 강조해 비판을 받았고 재임중 비서관의 독직사건으로 구설수에 올랐는가 하면 82년 서태영판사의 인사비판 외부기고를 문제삼아 인사파동을 불러일으키면서 대한변협으로부터 사퇴권고를,국회에서는 탄핵소추가 발의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김용철 9대 대법원장은 뛰어난 사법행정 능력에도 불구하고 5공 말기의 암울한 시대적 상황을 버텨내지 못하고 88년 6월 법관서명파동으로 중도사퇴했으며,이어 정기승 대법원장 후보는 여소야대 국회에서 사상 첫 임명동의 부결을 기록했고,재야출신으로 대법원장은 소리없는 사법 민주화를 추진했으나 정년으로 29개월여만에 퇴임했다.<권영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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