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꽉막힌 중기돈줄 부도걱정/실명제 몸살 앓는 현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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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사채시장 마비여파 “체감”/어음할인 못해 유통업체는 큰 시름/자료노출 꺼려 거래마저 중단사태
금융실명제 실시의 충격이 겉으로는 일단 수그러들고 있으나 중소기업계는 내면적으로 진통이 시작됐다.
발표직후만 해도 막연히 『당장이야 별일 있을라고』 정도로만 생각했던 중소기업인들은 이번주 들어 사채시장이 당장 사라지고 수금도 제대로 안되는 상황이 다가오자 모두들 긴장속에 하루를 맞고 있다.
대기업 납품업체,수출업체들은 아직 큰 영향이 없지만 그동안 사채시장의 어음할인,무자료거래 등에 크게 의존하던 대리점 등 유통업체와 이들에 물품을 공급하는 중소제조업체들 사이에는 이미 부도업체가 생기기 시작했고 어음기피·현금확보·대금결제거부·조업 단축 등의 현상도 심심찮게 발견되고 있다.
○현금확보 경쟁
○…용산전자상가·영등포 기계공구상가 등 유통업체 밀집지역에선 대리점·도매상·납품업체마다 서로 받을 것은 현금으로,줄것은 어음으로 지불하려는 「현금확보경쟁」이 벌어져 일선 판매를 제외하고는 서로간의 거래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태.
중소업체에 컴퓨터·복사기 등 사무기기를 공급하는 서울 영등포 H유통의 경우 16일부터 업체들이 대금결제를 미뤄 지금까지 단 한건의 수금도 못한 실정이다.
이 업체대표 한모씨는 『이번달 직원 월급을 못주는 것은 물론이고 메이커에 끊어준 가계수표의 지급일이 다음주인데 이를 제대로 막을지도 걱정된다』며 『정 안되면 물품을 벼룩시장에라도 내놓든지 임시휴업이라도 할 판』이라고 말했다. 이때문에 이 일대 업체들은 16일 지역별로 세미나·대책회의를 열어 전면적인 현금유통방법을 논의하기도 했으나 이해관계가 달라 대안마련에 실패했다.
○운영자금 고갈
○…스티로폴·물탱크 등 건자재를 제조업체에서 받아 건설현장이나 판매상에 공급하는 서울 응암동의 D상사는 16일 실제로 수표부도를 냈다. 이 업체 사장 김모씨는 당초 판매상들로부터 받은 어음이 있어 이를 할인해 당좌개설 계좌의 잔고를 채워넣을 요량으로 있다가 사채시장이 사라지면서 현금을 구하지 못해 5천만원의 부도를 냈다. 회사측은 『무자료로 받은 어음이다보니 은행할인도 불가능했고 현금을 빌리려 해도 아는 사람들이 은행에서 3천만원 이상을 빼면 세무추적을 당한다며 모두들 거부했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D상사에서 당좌수표 2천만원을 받고 물품을 내줬던 P화학은 이날 부도소식이 들리자마자 트럭을 보내 물품을 실어오는 등 채권확보작업을 벌이기도 했다.
이 업체관계자는 『우리가 원부자재업체에 끊어준 어음은 반드시 은행결제를 해줘야 하는 진성어음이어서 현금은 계속 나가는 반면 우리가 대리점에서 받은 어음은 은행할인이 안되는 비적격 어음이기 때문에 운영자금이 고갈돼 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우리가 작은 업체였다면 요즘상황에서 2천만원으로도 연쇄부도가 났을 것』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중소기협중앙회측도 무자료거래가 많거나 다단계 유통구조로 대리점 의존도가 큰 건자재·완구업계,남대문·동대문일대의 의류업체,청량리 주류 유통업체들을 중심으로 다음주부터는 연쇄도산의 우려가 있다고 관측하고 있다.
○큰 업체 나은편
○…이에 반해 대기업에 납품하는 업체들은 은행에서 대기업 발행어음을 항상 할인할 수 있어 사정이 조금 나은 경우다.
시화공단에서 섬유용 특수필터를 생산,납품하는 동남 휠타의 김동식사장은 『아직은 어려움이 우리에게 없으나 원부자재나 소모성 부품을 조달해주는 업체가 어음할인을 못해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고 전했다. 동남측은 남품업체가 쓰러지면 공장가동도 어려워진다는 판단아래 16일 납품업체의 요청을 받아들여 결제일인 오는 20일에 어음을 발행하지 않고 대신 9월말 현금을 지급키로 결정했다.<이효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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