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썽" 드라마 SBS 변신 몸부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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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고개 숙인 SBS」.
지난해 『모래 위의 욕망』으로 방송 사상 처음으로 연출자 연출 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은 데 이어 이번에 또 『오 박사네 사람들』의 연출자가 연출 정지를 당한 SBS가 보이고 있는 변신을 방송가에서는 이렇게 부른다.
SBS는 지난달 16일 『오 박사네 사람들』이 방송위원회로부터 연출자 연출 정지 처분을 받은 이후 오락프로의 자극성이 현저하게 줄어들고 제작진들 사이에서도 자중의 공감대가 확산되면서 제작국의 분위기도 가라앉아 있다.
이런 SBS의 변화가 가장 잘 드러나고 있는 프로는 『오 박사네 사람들』과 현재 최고의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는 『댁의 남편은 어떠십니까』.
『오 박사네 사람들』은 그 동안 장인과 사위, 장모와 사위, 아버지와 딸 등 가족간의 대화가 천박하다는 지적을 꾸준히 받아 왔는데 이번에도 장모와 사위 사이의 대화가 문제돼 연출 정지를 당하자 어법부터 고쳤다. 사위보고 『야!』 『임마!』 소리를 스스럼없이 하던 오 지명은 이제 사위를 『자네』로 부르고 다른 가족간의 대화도 관계에 맞게 바뀌고 있다. 『오 박사네 사람들』은 또 소재도 연출 정지 이후에는 캠페인성이 강한 것들로 선정하고 있다. 지난 달 25일에는 오 박사가 자매 결연한 소년 가장으로부터 감사 편지를 받고 신이 난 나머지 가족·이웃을 동원해 지하 카페에서 노인 위안 잔치를 벌이는 내용을 다뤘고, 31일에도 근검 절약을 소재로 다뤘다.
주부들에게 절대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댁의 남편은 어떠십니까』는 여성들의 한풀이식 부부관계 묘사가 건전한 부부관계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지적을 받아온 전형적인 저질 페미니즘 드라마.
그 동안 어딘지 모르게 모자라고 부인들의 등쌀에 시달리며 지내는 인물들로 남편들을 묘사해 남성들로부터 『남편의 권위를 구긴다』는 원성을 샀던 이 드라마도 이번 주부터는 남편들을 치켜세우기 시작했다.
아내의 데이트 충격으로 쓰러졌던 김영철이 상무로 복직하고 아내에 대한 태도도 세련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아내 친척의 회사에 취직해 있다 밀애 순간을 들켜 부산지사로 전출됐던 유동근도 과감하게 독립을 선언하고 나섰다. 사표를 내고 집에서 아내를 외조 하던 송기윤도 식당 경영자로 나선다.
또 자존심 강한 여자 이영애의 뒤를 쫓아다니며 갖은 푼수를 떨던 송승환도 마침내 그녀를 「길들이는데」 성공하게 된다.
방송관련자들은 SBS의 이러한 변화에 대해 일단은 긍정적 반응을 보이면서도 여론을 의식해 자중하는 모습을 보여주기에 너무 급급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사실 『오 박사네 사람들』은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려는 의욕이 앞서 코미디프로의 재미를 잃었고 『댁의 남편은 어떠십니까』도 부부들이 남녀 편을 갈라 애들처럼 싸우는 이상한 형국이 돼 버렸다. SBS의 한 간부는 최근 SBS를 둘러싼 상황에 대해 『방송에 대한 꾸준한 관리 없이 여론몰이식으로 행해지는 규제는 일시적인 효과는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인 방송 발전에는 도움을 주지 못하고 부작용만 낳는다』면서 『방송국도 점검이 필요한 때지만 방송정책 기관에서 현실성 있는 구체적인 정책을 내놓는 게 무엇보다 절실하다』고 말했다.<남재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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