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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적으로 위기에 시달린 크라이슬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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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호 21면

“그는 부하 사랑을 비즈니스 세계의 가장 지독한 위선이라 일갈한다. 자신의 의견에 토를 다는 인간을 싫어하지 않는다. 증오할 뿐이다. 무자비하게 직원을 해고해 ‘전기톱’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자기 보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챙긴다.”

벼랑 끝 크라이슬러의 구원투수 로버트 나델리 #“제2의 아이아코카가 되고 싶다”

주기적으로 위기에 몰려 ‘골골 80년’으로 통하는 미국 크라이슬러의 새 최고경영자(CEO)로 발탁된 로버트 나델리(59·사진)를 비판하는 한 블로거의 말이다. 나델리는 미국 생활용품업체인 홈데포의 CEO 시절 편법으로 스톡옵션을 과다하게 챙겼을 뿐만 아니라 주주와 부하 직원의 반발로 퇴진하면서 위로금으로 2억1000만 달러(약 2000억원)나 받아냈다. 그 정도면 악덕 경영자(Rogue CEO)라 불려도 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미국 경영자 시장에서 사망선고를 받았다는 평가가 우세했다.

그런데 지난주 그가 재기했다. 미국 사모펀드(PEF)인 서버러스가 다임러에서 사들인 크라이슬러를 소생시키기 위해 그를 CEO로 전격 선임한 것이다. 연봉은 단돈 1달러. 그 대신 대규모 주식보상을 약속받았다. 주식을 얼마나 받을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연봉 1달러’라는 코드 풀기에 열중하고 있다. 우선 ‘제2의 아이아코카’가 되겠다는 야망의 표현으로 본다. 아이아코카는 크라이슬러가 사실상 파산상태에 빠진 1978년 경영권을 장악해 회사를 되살려냈다. 그의 경영능력보다는 미 정부의 긴급자금 수혈 덕분이라는 지적이 있기는 하지만, 아이아코카는 일약 스타 경영자로 떠올랐다. 그때 그가 받은 연봉이 1달러였다. 하지만 회사가 살아나면서 그가 받은 주식 가치가 급등해 거액을 거머쥐었다. 나델리도 아이아코카와 비슷한 경로의 ‘주식 대박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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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나델리는 명예회복의 수단으로 크라이슬러를 택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그는 주주의 등을 쳐 제 주머니를 불렸다는 악평에서 탈출하고 싶은 욕망을 갖고 있다. 그래서 그는 크라이슬러의 대주주인 서버러스가 러브콜하기도 전에 ‘나를 CEO로 써달라’고 여기저기 구애하고 다녔다. 주식보다는 현찰을 좋아했지만 그래서 ‘연봉 1달러+주식 보상’ 패키지를 기꺼이 감수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가슴 한쪽에는 야망을, 다른 한쪽에는 절박감을 품고 있는 나델리가 크라이슬러를 과연 소생시킬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나델리가 별명인 ‘전기톱 밥’(로버트 애칭)다운 전략을 구사할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무자비한 정리해고로 비용을 절감하는 게 최우선 카드라는 것이다. 그도 이를 숨기지 않았다.

“이미 회사는 (정리해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신속하게 계획 이상으로 하는 게 우리가 원하는 바다.”

크라이슬러는 이미 1만3000명을 감원할 계획을 만들어놓고 있다. 나델리는 이 계획 이상으로 일을 저지를 것이라는 얘기가 크라이슬러 안팎에 파다하다. 또 그는 취임 일성에서 속도를 강조했는데, 실제로 CEO 선임 공식 발표 이전부터 노동조합 쪽과 접촉하는 물밑 작업에 이미 착수했다. 정리해고의 가장 큰 걸림돌인 노조 쪽의 양해를 구하려는 포석이다.

나델리는 자산매각 가능성도 내비쳤다. “충분히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이 썩고 있다”고 지적했다. 1순위로 뉴저지 뉴어크 공장의 매각이 거론되고 있다. 이 밖에 그는 제너럴 일렉트릭(GE) 시절 스승인 잭 웰치처럼 품질관리 프로그램인 식스 시그마를 저돌적으로 밀어붙일 전망이다.

그렇다고 병든 크라이슬러가 살아날 수 있을까. 일단 정리해고는 대주주인 사모펀드 서버러스의 입맛에는 맞는 처방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정리해고 등을 통해 단기적으로 손익계산서를 깔끔하게 만든 뒤 되파는 복안에 충실한 회생전략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기술 경쟁력으로 장기 성장동력을 되살려 회사를 키우기보다는 3∼5년 뒤 매입대금 70억 달러보다 더 받고 되파는 게 서버러스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나델리 CEO 선임도 크라이슬러가 1925년 설립 이후 80년 동안 주기적으로 되풀이한 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나도록 하는 데는 역부족일 것이라는 전망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크라이슬러는 25년 설립 이후 이제껏 모두 여섯 차례 위기를 겪었다. <그림 참조>

1950년 이후 석유파동이나 경기침체가 발생하면 어김없이 위기에 빠졌다. 특히 제2차 석유파동이 발생한 79년 전후에는 사실상 파산상태였다.

“모든 자동차 회사가 석유파동과 경기침체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크라이슬러만은 파산위기까지 내몰려 정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게 아이러니다.”(노엘 티치 미시간대학 교수)

위기 때마다 크라이슬러 주주들은 정리해고와 인수합병(M&A)에 정통한 사람을 CEO로 영입했다. 1950년대 래스터 럼 콜버트와 60년대 린 타운센드, 70년대 후반 리 아이아코카, 90년대 로버트 이튼, 그리고 현재 나델리가 바로 그들이다. “목적을 위해서는 저돌적이고 과감하며 고위험을 감수하는 인물을 CEO로 영입해 위기를 돌파해온 게 크라이슬러 역사였다.” 디트로이트의 웨인 스테이트대학 찰스 K 하이드 교수가 ‘롤러 코스터: 크라이슬러’라는 보고서에서 지적한 말이다. 하지만 크라이슬러는 그들을 영입해 목전의 위기에서 탈출하기는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위기를 맞았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아이아코카다. 그는 1978년 GM에서 영입돼 난파 직전인 크라이슬러호의 선장이 됐다. 신화적인 경영자가 됐을 뿐만 아니라 80년대 대통령 후보 물망에 1순위로 꼽혔다. 하지만 그가 물러나기 직전인 91년 크라이슬러는 또다시 위기를 맞았다. 1차 걸프전 이후 발생한 경기침체가 주 원인이었다. 그는 92년 위기에 시달리는 크라이슬러를 뒤로 한 채 씁쓸히 퇴진했다.

왜 그럴까. 하이드 교수는 ‘리더십 지속성의 부재’를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크라이슬러는 위기 때마다 메시아를 찾듯이 새로운 경영자를 영입했다. 새로 영입된 CEO는 회사의 경영방침, 신차 개발, 마케팅 전략 등을 ‘개인적인 성향’대로 전면 수정하곤 했다. 그러다 보니 회사는 갈지자로 걷기를 반복했다.

GM과 포드는 달랐다. GM은 1920년대 앨프리드 P 슬로언 2세가 회장으로 장기집권(1937∼56년)하면서 추진한 기술개발을 통한 경쟁력 강화 덕분에 자체 시스템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포드는 창업자 가문이 영향력을 갖고 있어 회사의 중심이 유지될 수 있었다. 한마디로 무게중심을 잡고 크고 작은 위기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크라이슬러는 파도가 약간만 커져도 마구 흔들리는 무게중심을 잃은 배와 같다”고 하이드 교수는 지적했다.

나델리는 이런 크라이슬러에서 중심을 잡아줄 수 있을까. GE 시절부터 나델리를 잘 아는 노엘 티치 교수는 “그가 스승인 잭 웰치처럼 관료주의와 불필요한 조직을 혐오하는 성향을 유감없이 드러내며 그동안 축적된 유·무형의 노하우까지 하찮은 것으로 여길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크라이슬러를 자기 취향대로 뜯어고칠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이는 과거 구원투수로 영입됐던 다른 CEO들처럼 자기 뜻대로 회사를 이끌어가다 떠난 뒤 흔적도 남지 않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일부 언론은 나델리의 괴팍한 성격을 이유로 단명 가능성을 거론한다. 홈데포 시절 그는 매장의 어두운 조명 같은 시시콜콜한 문제까지 지적하는 e-메일을 말단 직원에게 띄워 원성을 샀다. 그가 크라이슬러에서도 이런 행태를 되풀이하면, 조직 불화가 생겨 조기 퇴진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델리는 크라이슬러 안팎의 이런 우려를 잘 알고 있다는 듯이 새로 맡은 회사와 자신의 인연을 들먹이며 부드러운 이미지를 구축하려 애쓰고 있다.

“아내와 첫 데이트한 차가 크라이슬러 ‘닷지(Dodge)’였다”라고.

WHO?

나델리는 웨스턴 일리노이 대학을 졸업한 직후인 1971년 GE에 대졸 사원으로 입사해 1995년 전력부문 사장까지 올랐다. 잭 웰치의 과감한 정리해고와 사업부문 매각 전략을 충실히 따라 ‘리틀 잭’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제프리 이멜트·제임스 맥너니와 함께 차기 회장 후보 3인방에 뽑힐 정도였다. 나델리는 이들과 치열하게 경쟁했으나 결국 이멜트에게 패했다. 그는 2000년 GE를 떠나 생활용품 업체인 홈데포의 CEO가 돼 올 초까지 일했다.

홈데포 시절 그는 행운아였다. 주택시장 붐을 타고 매출이 급증해 성공한 경영자로 각광받았다. 지난해 중반까지 주가가 200% 뛰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주택경기가 둔화하면서 실적과 주가가 떨어지자, 그의 제왕적이고 오만한 성격이 낳은 문제가 표면화됐다. 게다가 스톡옵션 행사 가격을 낮추기 위해 편법을 동원한 사실이 들통나 악덕 경영자로 지목됐다. 결국 회사는 그를 내보내기 위해 2000억원에 달하는 퇴직 위로금을 지급해야 했다. 그는 크라이슬러 CEO 선임 직후 기자회견에서 “(홈데포 시절 있었던 일을) 웃긴 이야기쯤으로 여겨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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