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행과 시장의 대립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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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호 18면

중앙은행들이 판단을 잘못한 것인가, 아니면 시장이 과민 반응한 것인가.

지난주 글로벌 금융시장의 추락은 우리에게 이런 의문을 남긴다. 이에 대해 나름의 답을 갖고 있어야 중심을 잡고 시세 흐름에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지난주 정례 금리정책회의를 열었지만, 시장이 바라던 금리인하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FRB는 “서브프라임(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에 따른 금융시장의 변동성에도 불구하고 경제는 완만한 상승 흐름을 지속할 것”이라고 낙관했다. 하지만 곧바로 서브프라임에 대한 우려가 다시 증폭됐다. 주가가 급락하고 단기 금리는 뛰었다.

FRB는 서브프라임 사태가 금융시장의 한 모퉁이에 국한된 문제로 인식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금융권 전반의 위기로 확산되고, 그 여파로 기업 투자와 민간 소비가 위축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주말의 자금 공급도, 정책금리인 연방기금금리 목표치를 유지하기 위함이지, 위기에 처한 금융회사들을 살리기 위한 구제금융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서브프라임 때문에 손실을 보게 된 헤지펀드와 사모펀드 등은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며 능력이 없다면 시장에서 퇴출되는 게 당연하다는 시각인 것 같다.

FRB는 서브프라임 타개책으로 금리인하 카드를 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이다. 금리를 내리더라도 그 명분은 고용과 투자의 확대 쪽에서 찾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행은 한술 더 떴다. 지난주 시장의 예상을 깨고 콜금리를 또 인상했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이 국내로 전염되는 일은 없을 것이란 자신감을 드러낸 조치였다. 하지만 주말에 글로벌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국내 주가가 폭락하자 당혹스러워하는 모습도 드러냈다.

이제 우리의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서브프라임 사태의 파괴력은 분명 예상했던 것보다 크게 밀려들고 있다. 헤지펀드와 사모펀드, 연기금 등 글로벌 금융시장의 플레이어들이 주식을 계속 처분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들은 서브프라임과 관련 파생금융상품의 손실이 몰고올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보유 주식을 내다팔아 현금을 확보해두고 있는 것이다. 한국 주식을 유독 많이 팔고 있는 것은 그동안 탁월하게 많이 올랐기 때문이다.

경제의 펀더멘털과 기업의 수익에 별 문제가 없다는 중앙은행들의 판단에 의문을 제기할 단서들은 아직 찾아보기 힘들다. 증시의 대세상승 흐름이 훼손될 상황은 아니라는 얘기다. 다만 서브프라임 때문에 입은 상처가 각오했던 것보다 훨씬 깊은 것은 사실이다. 상처가 아물기까진 적잖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길게 보고 주식을 나눠 사들이는 적립식 투자자들에겐 즐거운 시간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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