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공장들 해외이전 '제조업 공동화' 걱정인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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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제조업 공동화(空洞化)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높은 임금과 정부 규제 등 나쁜 사업환경을 피해 공장을 해외로 옮기는 기업들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런 현상은 갈수록 심해지는 실업 문제를 증폭시키고 있다. 그렇다고 국내에선 더이상 생존하기 힘겨워 떠나는 기업들을 탓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다만 그들이 떠난 빈 자리를 메울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를 서둘러 키우는 게 과제다.

전자저울 제조업체인 카스(CAS)는 1995년 중국에, 2000년에는 인도에 현지 공장을 세웠다. 갈수록 높아지는 국내 생산 원가를 감당하기 힘들어서였다. 해외공장의 가동과 함께 경기도 양주에 있는 국내 공장의 단순 생산인력은 2000년 2백여명에서 현재 1백여명으로 절반 가까이 줄였다.

그 후 국내 공장을 고부가가치 연구개발기지로 탈바꿈시키면서 전문 연구인력을 50명 이상 새로 뽑았다. 해외 매출이 쑥쑥 늘어나면서 전세계 시장을 향한 영업.관리 인력도 1백명 이상 확충했다.

이 회사의 김현경 경영지원본부장은 "중점 생산기지를 적기에 해외로 옮기지 않았더라면 회사의 존립이 위태로웠을 수도 있다"며 "국내 공장의 인력을 해고시킬 땐 마음이 아팠지만, 결과적으로 국내 채용인력은 늘어났다"고 말했다.

◇얼마나 심각한가=구체적인 통계로 보면 국내 제조업의 공동화가 아직 심각하지는 않다. 수출입은행에 따르면 2003년(1~11월) 국내 기업들의 해외 직접투자 실적은 30억8천만달러(약 3조6천억원)로, 전년(30억4천만달러)과 엇비슷했다. 해외 직접투자가 가장 활발했던 2001년(50억3천만달러)에 비해선 오히려 20억달러가량 줄었다.

국내 부가가치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30%.2001년 현재)을 봐도 일본(20%).독일(22%).미국(14%) 등 선진국들보다 높다. 국내 기업들은 해외에서 공장을 돌리더라도 원재료와 부품의 51%는 한국에서 조달해 쓰고 있다.

김종민 국민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은행 조사를 보면 국내 제조업체의 40%가 장사를 해봐야 이자도 벌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기업들의 해외 투자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과거에 가발이 우리의 주력 수출 제품이었던 때가 있었지만, 지금도 그런 제조업을 유지했다면 과연 국민소득 1만달러에 도달했겠느냐"면서 "최근에도 가전과 자동차 등의 완제품 조립 라인이 해외로 나가는 대신 국내 첨단부품 산업은 커지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걱정스러운 것은 국내에서도 생존 가능한 경쟁 우위 산업들까지 해외로 나가는 일이다. 아직은 드물지만 앞으로 그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다시 심각해진 노사분규와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정부 규제 때문이다.

무역협회 무역연구소의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내 제조업체 중 절반에 가까운 48%가 생산 거점의 해외 이전을 계획하고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국토연구소의 또 다른 조사를 보면 향후 해외 진출을 모색 중인 기업의 90%는 내수 확대.노사갈등 해소.규제 완화 등 국내 조건이 개선되면 굳이 해외로 나가지 않고 국내에 잔류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해외 투자와 신산업의 선순환=LG경제연구원 이지평 연구위원은 "기업들의 해외 투자가 곧 산업공동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며 "국내의 과잉 자본을 해소하기 위해서도 원가 절감이나 시장 개척을 위한 해외 투자는 계속 늘려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李연구위원은 "최근 일본처럼 해외 투자가 부진한 가운데 국내 제조업이 쇠퇴하고, 이를 대체할 신산업도 발전하지 못하는 상황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삼성경제연구소 김재윤 수석연구원은 "해외로 빠져나가는 산업을 메울 수 있는 고부가가치형 신산업들을 서둘러 육성해야 한다"면서 "정보기술(IT) 인프라 등 우리의 강점을 활용하면서 노사관계의 안정 등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면 제조업의 경쟁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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