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미술의 담대함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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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호 02면

한 미술관에 구경갔다가 책임자로부터 재미있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얼마 전 이곳에서 열린 한국 화단의 원로화가 전시회 때 일화입니다. 그의 작품은 단색조(모노크롬), 쉽게 말하면 대충 한 가지 색으로 보일 만큼 화면 전체를 단일 색조로 덮어버리는 화풍인데요. 관람객 한 분이 전시장을 다 돌고 나더니 현장을 지키고 있는 학예연구원에게 와서 묻더라는군요. “그런데 작품은 어디 있나요?”

순화동 편지

그가 이어서 전해준 또 다른 사건 전말을 듣고 나니 ‘피식’ 나오려던 웃음이 쏙 들어갔습니다. 설치미술전을 보러 온 한 아이가 작품 하나를 망가뜨려 긴급 보수하게 된 내력인데요. 전시장 이곳저곳에 큰 글씨로 ‘손대지 마시오’ 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던 모양입니다. 작품 감상을 하던 아이 아버지가 좀 짓궂었던지 “얘야, 손대지 말라니 발로 차봐라!” 했다는군요.

현대미술을 이해하는 일은 이렇게 어렵습니다. 거꾸로 현대미술을 이해받는 일 또한 쉽지 않습니다. 요즈음 세계 각 미술관이 전시 기획과 소장품 수집 못지않게 교육과 홍보에 애쓰는 까닭입니다.

독일 중부 도시 카셀에서 5년마다 열리는 현대미술의 큰잔치 ‘카셀 도쿠멘타(Kassel Documenta) 12’를 보러 왔다가 신선한 현장을 목격했습니다. 이번 축제의 주제가 ‘현대성(Modernity)? 삶(Life)! 교육(Education):’일 정도로 교육을 중시한 조직위원회 쪽이 고심해 내놓은 일종의 이벤트랄까요. 전시를 안내하는 ‘아트 가이드’의 설명을 따라 관람객 모두가 미리 준비한 흰 목장갑을 끼고 조형물을 만져보는 모습이었는데 ‘짜릿’하더군요. 행사 주제에 붙인 ‘? ! :’의 속내를 음미하게 된 순간입니다.

‘이해하고 싶고 이해받고 싶은’ 현대미술의 최전선에서 요즈음 가장 열심히 뛰고 있는 이는 중국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번 ‘카셀 도쿠멘타 12’에서 화제몰이를 하고 있는 중국 작가 ‘아이 웨이 웨이(Ai Wai Wai)’는 그 상징이랄 수 있습니다. 그가 야외 잔디밭에 세운 ‘템플리트(Template)’는 중국 명·청(明·淸) 시대의 집에서 뜯어낸 낡은 창틀과 문짝을 얽어 쌓아올린 대형 조형물(사진 왼쪽)인데요. 사라져버린 중국의 옛 영화(榮華)를 되살린 이 작품은 안타깝게도 카셀에 몰아친 비바람과 벼락을 맞아 폭삭 주저앉았답니다(사진 오른쪽). 당장 일으켜 세워야 맞는 일이겠으나 중국인이 누구입니까? 그는 “오히려 잘됐다”며 그대로 두었답니다.

문명의 쇠락과 잔해 속에서 교훈을 찾으라고 했다나요. 오호라! ‘21세기: 성당(盛唐)시대’를 꿈꾸는 중화인민답네요.
지금 우리의 ‘? ! :’는 무엇일까, ‘템플리트’ 앞에서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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