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유쾌한 배우 '박철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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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호 08면

자연스러운 전라도 억양으로 알 수 있듯 박철민은 ‘화려한 휴가’의 배경인 광주에서 태어났다. 광주항쟁이 일어났던 1980년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반쯤은 눈치챌 만한 어중간한 나이, 중학교 2학년이었다. “나는 광주에서도 후미진 지역에 살아서 자전거를 타고 유람하듯 시내를 돌아다녔다. 그때는 신기했지. 타이어를 태우고, 곡소리가 터져나오고, 시민들은 수군거리며 걱정하고.” 직접 목격한 광주와 TV에서 방영되는 뉴스가 너무 달라 이상했던 그해 5월 이후 27년이 지나 박철민은 금남로를 메우고 경적을 울렸다는 수백 대의 택시 가운데 한 대를 운전하는 택시기사 인봉이 됐다. 화려한 무늬의 셔츠를 입고 시위대 가장 앞에서 군인들을 상대로 농담을 쏟아놓는 남자.

박철민은 무표정하게 굳어 있는 군인조차 무심코 웃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인봉을 연기하며 눈물투성이 영화 ‘화려한 휴가’에 드문드문 웃음을 불어넣었다.
연극 무대에 서던 시절부터 박철민은 코미디 연기에 능한 배우였다. 광주항쟁과 노동운동을 다룬 ‘부활의 노래’로 처음 영화에 출연했고 역시 광주를 기억하는 ‘꽃잎’에서 소녀를 찾아 헤매는 대학생들인 ‘우리들’ 중의 한 명을 연기했지만, 그가 관객에게 기억되는 배우가 된 것도 역시 코미디 영화를 통해서였다. ‘화려한 휴가’의 김지훈 감독의 데뷔작 ‘목포는 항구다’에 말만 많고 실속은 없는 깡패 가오리로 출연한 박철민은 숨도 쉬지 않고 쏟아내는 애드리브와 그에 찰싹 달라붙는 몸짓으로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 입담은 몇 년째 샘물처럼 퐁퐁 솟아오르고 있어 ‘불멸의 이순신’에 김완으로 출연할 당시에는 인터넷에 그의 어록이 떠돌아다닐 정도였다.
그러나 박철민의 코미디는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쉽게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는 ‘목포는 항구다’를 찍으면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여 3분짜리 장면을 준비해 리허설을 했고, 자연스럽게 노는 것처럼 느껴지는 ‘화려한 휴가’의 출연 장면마다 몇 가지 버전을 만들어 감독과 스태프들에게 보여주었다. “지금도 아쉬운 장면이 있다. 그때 ‘흔들어 주세요’라는 문구로 유명했던 모 음료 CF가 있었다. 인봉이 그 음료수를 마시면서 시민군들을 웃겨주는 장면이었는데, 안성기 선배까지 나서서 허리는 가만 두고 엉덩이만 흔들어 보는 게 어떻겠느냐, 그러면서 모두들 너무 재미있게 찍었다. 그 바로 뒷장면이 공수부대가 도청으로 들어오는 장면이었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너무 튄다고 하여 편집된 거다.”

인봉과 그 파트너 격인 용대(박원상)가 짝을 맞추어 노는 장면들이 몇몇 평자들에게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박철민은 다르게 생각한다. “사람은 두려울수록 더욱 질펀하게 놀게 된다. 인텔리들이라면 도청에서 편지를 쓰고 그럴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농담을 한다. 광주는 시민군이 스스로 권력을 물리치고 만들어낸 해방공간 아니었나. 그때 우리는 다들 노래도 많이 불렀고 해방춤을 추면서 계엄군을 놀리기도 했다. 중학교 2학년의 시선으로 지켜보았을 뿐이지만 나는 부채의식이라는 것이 따로 있겠는가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인봉과 용대는 주거니 받거니 시민군과 관객에게 모두 웃음을 준다. 그리고 그런 웃음이 있었기에 도청이 무너지던 밤, 어머니가 계시는 방향을 향해 절을 올리다 말고 가만히 흐느껴 우는 두 남자의 눈물이 더한 비극으로 다가와, 광주를 기억하도록 만든다.

갓난아이와 착한 아내를 두고 도청으로 돌아가는 인봉으로 눈물을 쏟았던 박철민은 얼마 전 또다시 광주에서 영화 한 편을 찍었다. ‘광식이 동생 광태’의 김현석 감독이 연출하는 ‘스카우트’는 선동열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광주로 내려간 야구코치의 이야기로 1980년 5월 17일에 끝을 맺는 영화다. 이 영화에서 박철민은 한 여자를 오랫동안 사랑하고 있는 남자를 연기했다. 말하자면 멜로. TV 드라마 ‘그라운드 제로’에서 몸이 아픈 여인에게 순정을 바치는 택시기사를 연기하기도 했던 박철민은 솔메이트 같았던 코미디 연기 외에도 멜로 연기의 재미를 발견한 것이다. “나도 어울릴까 싶었지만 박철민 안에 또 다른 박철민이 있더라. 한 번도 안 해봐서 몰랐는데 이런 거구나 싶었다.

상대에게 한 번 표정을 주고 호흡을 주고 그녀의 심리를 따라가는 것이 재미있었다. 앞으로 멜로가 들어오면 절대 사양 안 하고 다 하려고.(웃음)”
반년이 넘게 ‘화려한 휴가’를 찍으면서 박철민은 스태프들 앞에서 리허설을 해 보이는 것이 즐거웠다고 했다. “뙤약볕 아래서 고생하고 있는 스태프들이 내 연기 보고 웃을 수 있으면 쭈쭈바 한 개씩 돌리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비닐이 쪼글쪼글해지도록 빨아먹고 나서도 얼음 부스러기가 아까워 공기를 불어넣어 비닐을 통통하게 만든 다음, 마지막 한 방울까지 입으로 털어넣던 50원짜리 쭈쭈바. 그런 쭈쭈바 같은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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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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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민은 원래 연극영화과에 가고 싶어 했지만 대입원서를 직접 낸 아버지 탓에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법이다. 연극 동아리에 몸담은 그는 교정의 비둘기를 사냥하고 물고기를 낚으며 파란만장한 세월을 보낸 다음 연극 무대로 나섰다. ‘대한민국 김철식’ ‘늘근 도둑 이야기’ ‘비언소’ 등이 대표작. 2인극인 ‘오봉산 불지르다’로는 연극협회에서 선정하는 ‘올해의 베스트 5’에 들기도 했다. 몇 편의 영화에도 출연하던 박철민은 그의 연극을 좋아했던 김지훈 감독의 데뷔작 ‘목포는 항구다’에 깡패 가오리로 출연하면서 영화배우로서의 인생을 시작했다. “쉭, 쉭, 이것은 입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여.” 온전히 그에게 맡겨진 1분짜리 장면이 기폭제였다. 불타는 입담을 과시했던 ‘불멸의 이순신’의 군관 김완 역으로 2005년 KBS 연기대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하기도. “‘화려한 휴가’가 잘되고 있는 요즘 날마다 즐겁고 행복하다”는 그는 아직 끝나지 않은 ‘화려한 휴가’ 지방 무대 인사와 영화 ‘마이 뉴 파트너’ 촬영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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