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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심포니 창단 100주년] 입장료 내리고 "청중 앞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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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여러분, 앞으로 '대타(代打)' 출연은 허용하지 않습니다." 1904년 봄 런던. 퀸즈홀 오케스트라 연습 도중 이 악단의 재정담당 매니저 로버트 뉴먼이 단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짧은 한 마디가 영국 최고의 교향악단으로 손꼽히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LSO)를 출범시킨 계기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당시만 해도 런던에서는 상설 오케스트라 개념이 없었다.

퀸즈홀 오케스트라 단원들도 발레 공연이나 호텔 등 다른 곳에서 연주료를 더 준다고 제의해 오면 동료나 제자에게 연주를 맡기고 자신은 '물 좋은'일감을 찾아 자리를 비우는 게 예사였다.

하지만 리허설에 보이던 얼굴이 연주 때 사라지기 일쑤여서 연주의 질적 향상을 기대할 수 없었다. 뉴먼의 '폭탄 선언'은 곧 겸업 금지를 의미했다.

퀸즈홀 오케스트라 단원 46명이 사표를 냈다. 퀸즈홀에서 주는 연주료로는 생활비를 대기에도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지휘자와 극장의 속박에서 벗어나 단원 스스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자율적인 운영을 하는 '벤처'오케스트라를 만든 게 LSO다.

영국 최초의 자영(自營)악단 LSO가 올해 창단 1백주년을 맞는다. 지난 10일 바비칸홀에서 브리튼의 오페라 '피터 그라임스'를 콘서트 형식으로 선보이면서 1백주년 시즌의 막을 열었다.

1백회 생일인 오는 6월 9일에는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미도리, 비올리스트 유리 바슈메트, 기타리스트 존 윌리엄스, 피아니스트 알프레드 브렌델 등 세계 정상급 연주자들이 출연하는 갈라 콘서트를 연다. 수석 지휘자 콜린 데이비스경을 비롯, 마이클 틸슨 토머스.안토니오 파파노.므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리처드 히콕스 등 5명이 지휘봉을 번갈아 잡는다. 또 LSO 1백주년을 맞아 영국 타임스 음악평론가 출신 칼럼니스트인 리처드 모리슨이 쓴 'LSO, 영광과 격동의 1백년'이 출간됐다.

LSO는 단원 전체가 재정적 손익을 분담하고 이들이 선출한 대의원들이 지휘자.협연자를 선정한다. 회장은 물론 경영감독(사무국장)까지 단원 출신이다. 현재 LSO 회장은 튜바 수석 패트릭 해릴드, 경영감독은 첼리스트 클라이브 길린슨이다.

창단 공연은 1904년 6월 9일 오후 3시 퀸즈홀에서 열렸다. 단원 대부분이 오후 7시면 런던 코벤트가든 오페라에 출연하기로 돼 있었다. 입장권 최고가는 7실링 6다임. 당시 노동자의 평균임금 이틀치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객원 지휘자'제도도 당시 영국에서는 생소한 개념이었다.

음악성이 뛰어나도 청중을 끌어 모으지 못하는 수석 지휘자는 1년 만에 쫓겨나기 일쑤였다. BBC 교향악단과 런던 필하모닉 창단으로 단원 상당수가 빠져나가는 위기를 겪기도 했다. 운영자금을 지원받는 조건으로 성악가를 아내로 둔 음악애호가에게 지휘자.협연자 선정권을 넘겨준 적도 있었다.

LSO는 82년 개관한 바비칸홀과 상주 계약을 하고 이곳에서 연간 90회가 넘게 공연 한다. 바비칸홀의 소유주인 런던시에서 지원금도 받는다. LSO는 매년 10편에 가까운 영화음악을 녹음한다. 2000년부터 자체 음반 레이블 'LSO 라이브'를 만들어 매년 5~6장의 음반을 발표해 왔다.

지난해 3월 허물어져 가는 세인트 루크 성당을 개조한 연습실 겸 교육센터의 문을 열었다. 명실공히 영국을 대표하는 오케스트라답게 청소년 음악교육에 발벗고 나선 것이다. 폭넓은 문화향수를 위해 정기연주회 입장권도 올해부터 6.5~35파운드에서 5~25파운드(약 1만~5만2천원)로 내렸다. 또 객석의 50%를 12파운드(약 2만5천원)이하로 책정했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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