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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뭐든 나눠먹던 우정 못잊어"|79년 "28일 실종생환" 가재 3총사 울산 오윤한·최병훈·채창수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14년 전인 79년8월 가재를 잡으러 마을 뒷산에 올라갔다 실종된지 28일만에 극적으로 살아 돌아와 전국을 깜짝 놀라게 했던 세 어린이가 있었다. 당시 7세였던 오윤한(21)·채창수(21)군과 6세였던 최병훈군(20).
79년 8월4일 세 꼬마가 소말리아 어린이를 연상케 하는 「말라 비틀어진」모습으로 발견됐을 때 전국은 이들로 인해 떠들썩했다. 어머니는 알아볼 수 없게 마른 아들을 보고 실신했으며, 많은 이들은 서늘했던 가슴을 쓸어 내리며 겨우 6∼7세밖에 안된 이들이 산 속에서 28일간 목숨을 부지한 것에 대해 「연구대상」이라며 놀라워했다.
그러나 어느새 키가 훤칠하고 목소리가 굵은 청년으로 자란 이들에게선 그때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가장 나이가 어렸던 최군은 올해 울산남고를 졸업하고 자동차학과 진학을 목표로 재수중이며, 오군은 경주전문대 환경공학과 2학년에 재학 중으로 군 입대를 앞두고 있다. 또 채군은 현대공고를 다니다 중퇴, 현재 고졸 검정고시 준비에 여념이 없다.
변함없이 고향인 울산에서 우정을 나누며 살고있는 세 사람은 그때 일을 『가끔씩 떠오르는 추억』이라며 여유있게 웃었다.
울산시 동부동 한 동네 친구인 세 어린이가 마을에서 사라진 것은 79년 7월7일 오전10시쯤. 가재를 잡기 위해 가끔 오르던 마을 뒷산인 남목산을 찾은 이들은 가재 잡기에 정신이 팔려 계곡을 자꾸만 거슬러 올라갔다.
해가 기울자 금세 어두워진 산 속에 갇혀 길을 잃었고 첫날밤엔 널따란 바위에 나란히 누워 울다 잠이 들었다. 다음날부터는 허기진 배를 물로 채우고 산딸기도 따먹으며 비를 피할 수 있는 팔자모양의 바위 아래에서 어깨를 맞대고 잠자곤 했다.
최군은 『가재 잡으러갔지만 사실 28일 동안 가재는 한 마리밖에 못 잡았어요』라며 웃었고 오군은 『집을 찾고 싶었지만 나중엔 움직일 기운조차 없어 엄두도 못냈다』고 말했다.
어느 날 가까이에서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자신들을 찾는 소리를 듣고 대답했으나 목소리가 워낙 작았는지 못 듣고 그냥 지나칠 때 가장 안타까웠다고 했다. 결국 이들은 실종된지 28일째 되던 날인 8월4일 거의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동축사 부근에서 나물 캐던 세 할머니에 의해 발견, 구출됐다.
오군은 『당시 할머니들에게 발견되지 못했더라면 아마 죽었을 것』이라며 『그 사건 이후로 앞으로 오래 살거란 얘기를 수없이 들었다』고 말했다. 세 사람은 명절이면 세 할머니를 찾아 뵙곤 했지만 이젠 모두 돌아가셨다고 전했다.
또 세 사람은 『그때 배가 몹시 고팠지만 아무리 작은 거라도 나누어먹은 기억이 잊혀지지 않는다』며 『지금 같으면 아마 힘센 사람이 혼자 먹었을지도 모른다』며 짓궂게 웃었다. 이 사건이후 세 사람은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똑같이 「가재」라고 불렸다. 오·최군은 『개구리소년 실종이 남의 일 같지 않다』며 『개구리소년들이 어딘가에 살아 있으리라고 믿는다』고 입을 모았다. 4일 가재 3총사는 「무사귀환」을 기념해 나란히 남목산을 다시 오를 계획이란다. 사건 이듬해인 80년부터 지금까지 해마다 치러온 연중행사다. 세 사람은 『우리가 그 밑에서 잠을 잤던 바위가 그대로 있다』면서『이젠 셋이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비좁다』며 활짝 웃었다. 【울산=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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